[사설]

땅에 엎드려 일을 하지 않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넘어 복지안동(복지부동하면서 눈치만 본다는 뜻), 낙지부동(낙지처럼 땅에 들러붙어 주어진 일만 하는 경우) 소리를 듣는 공직사회에 '적극행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가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적극행정 지원위원회'를 구성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힘을 주고 뒤를 봐주겠다고 한 것이다. 주어진 일만 하는 것도 모자라 해야 할 일도 안하는 소극행정을 벗어나 보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전망은 별로 밝지 못하다. 새로울 것이 없으며 구조적 걸림돌이 많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앙과 지방 할 것 없이 공직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보신주의, 무사안일, 소극행정은 특히 문재인 정부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국무총리가 직접 시책 시행과 관련 규정 개정의 의미를 설명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적극행정 지원 내용만 보면 예전에 비해 진일보한 부분이 있다. 기관별로 지원위원회를 설치해 각각의 실정에 맞게 운영한다던지, 고의성이 없거나 지원위 의견을 따랐을 경우 징계를 면제하는 것 등은 눈여겨 볼만 하다. 또한 적극행정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징계 및 소청 규정을 손본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적극행정에 따른 보상도 매려적이지만 이로 인한 징계 위기시 법률조언을 하거나, 민사 소송에 대한 지원 방침 등도 공무원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나 직무태만의 경우 징계 요구 등의 조치를 하겠다는 게 적극행정 지원방안의 주요내용이다. 제도적으로는 짜임새가 있어 보이고 성과도 기대된다. 문제는 정책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이 좌우되는 행정조직의 구조적 한계에 있다. 더구나 이를 조장하는 법령의 모호함이 더해지면 적극행정을 하고 싶어도 망설이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과제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일을 해야 할 이유보다 하면 안될 이유를 먼저 찾는 게 지금의 공직 분위기다. 윗선의 지시만 챙기고, 어쩌다 내놓는 새로운 정책 등도 상급자 눈치보기에 따라 이뤄진다. 전례가 없는 사업, 파격적인 제안을 돌출 행동쯤으로 무시하는 분위기와 문화속에서는 적극행정이 숨쉴 여지가 없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직권남용으로 옭아매는 일이 일어나는게 대한민국 공직사회다. 이런 황당함이 사라지고, 폐쇄적인 분위기가 깨져야 적극행정이 빛을 보게 된다. 이는 거꾸로 적극행정을 통해 이같은 공직문화의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모든 상황의 바탕에는 정권에 따라 정책과 사업의 잣대가 달라지는 과거의 사례들이 있다. 박수받았던 일이 하루아침에 징계 대상이 된다면 누가 같은 일을 되풀이 하려 하겠는가. 따라서 이번 조치가 이같은 문제에 대한 안전판이 되려면 제도 시행보다 의식변화와 의지가 우선돼야 한다. 청와대나 지자체 수장의 눈치를 보지않고,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사업을 하고, 행정을 펼쳐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방치하고, 외면한 채 적극행정을 내세워 윗선에 맞춰 춤을 추는 공직사회를 바꾸겠다는 것은 공허한 말잔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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