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한인석 제천문인협회장

방앗간이 있는 옆 동네 창고 마당에 천막이 쳐지고 확성기를 단 트럭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방송을 하면 조무래기들이 줄지어 따라 다녔다.

저녁밥을 일찍 해 먹고 어른들이 영화를 보러 가면 아이들도 따라 나섰다.

돈이 없으니 아이들은 표를 살 길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인근 집 지붕 위나 나무위로 올라가서 '홍도야 우지마라', '맨발의 청춘',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같은 영화를 훔쳐봤다.

지면보다 높은 데로 올라가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 같은 화면은 보이는데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발동기 소리 때문에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를 않아서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클라이맥스에 꼭 필름이 끊어질게 뭔지, 매미처럼 매달려 가슴 조이며 먼 발치서 구경하면서도 들킬까봐 신경은 아래로 가 있었다.

이튿날 학교에 가면 운 좋게도 안에 들어가서 영화를 본 놈이 침을 튀기며 설명하는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라디오로 외부 세상과 소통하던 시절이라 그래도 '한여름 밤 가설극장'을 가는 즐거움이란, 해외여행을 가는 것 만큼이나 설레던 시절이었다.

한인석 제천문인협회장
한인석 제천문인협회장

제천 청풍호반의 야외 노천극장에서 영화와 공연을 함께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벌써 15회째를 맞는다.

청풍호반 특설무대의 '원썸머나잇'은 마니아들에게는 더없는 열정의 피서처이기도 하다.

올해는 제천 시내 한가운데 있는 동명초 옛 터인 동명로 77무대에서 전야제 콘서트도 열리며, 영화제 기간 중 추억의 영화도 상영되고 경쟁부문 대상 수상작도 상영된다.

뿐만 아니라 메가박스 제천, 문화회관, 시민회관에서도 영화를 상영하고 시내 문화의 거리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진행된다.

그야말로 제천은 겨울벚꽃축제를 비롯해 한여름 영화제로 극한 계절에 오히려 힐링을 추구하는 '문화의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폭염 예보가 있지만, 그 옛날 노천 가설극장의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즐거움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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