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려했던 한·일간 경제전쟁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수출규제 품목 우대 대상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우리 정부도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기로 함에 따라 무역전쟁이 벌어졌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막기위해 우리 정부가 외교적 총력전을 펼치고, 일본 언론 등에서도 부당함을 지적했음에도 무위로 끝났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이다. 양국간 무역규제로 인해 상당한 피해와 불이익 발생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전기로 삼을 수 있게 현명한 대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5일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이번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책을 내놨다. 단기적으로 소재·부품 공급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고, 자립적 경쟁력을 갖추도록 재정·세제·금융 등을 전략적으로 집중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예타면제, 환경절차 패스트트랙 적용, 국내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 산업 생태계 구축 등 기술개발 및 생산·투자 관련 규제와 애로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하나같이 당장 필요하고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자립을 위한 것들이다. 우리 산업을 한단계 더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 허투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봤던 내용들이다. 그동안 업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어도 특단의 대책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뿐이다. 정부가 그동안 했던 큰소리와는 많은 격차가 느껴진다. 목표치로 내세운 5년내 안정적 공급이 말처럼 가능할지 걱정이 앞선다. 말뿐인 대책은 아니지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수준도 못된다. 당장 발등의 불인 업계에서 뭐라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대책이 안되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내용들로 난관을 극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저런 계산법으로 따져봐도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커 직접적인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이 5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 정밀기계·공작기계 장비, 반도체·배터리 등과 관련이 있다. 충북도 SK하이닉스와 LG화학은 물론 다수의 협력사 등에 직접적인 피해가 불가피하다. 특히 작은 기업일수록 판매·자금 등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을 포함한 관련 기업의 자금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소재·부품 확보를 위한 총대를 제대로 메야 한다. 기업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찾아서 풀어야 한다.

그렇다고 매번 뒷북에 헛다리를 짚는 정부에 의존해서는 별로 희망이 없다. 지금 한껏 불타오르는 반일 열기를 최대한 키워야 한다. 단 민간차원에서만 진행돼야 한다. 당장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섣불리 나서면 일만 더 복잡해진다. 그런 경험을 또 반복해서는 안된다. 국가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냉정할 것은 냉정해야 한다. 미덥지 않은 정부라면 국민이 현명해지고, 단단해져야 한다. 목소리를 높일 부분은 가려서 높이고, 따져 물을 것은 분명하게 가리면서도 돌아올수 없는 다리는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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