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作 박달재에서
장영주 作 박달재에서

한가운데를 한자로 중(中)이라고 하고 마음을 심(心)이라고 하니 합하면 충(忠)이 된다. 중심을 지키는 고을이 충주이다. 충주를 향하면 중부의 으뜸이라는 뜻의 중원군이 나온다. 그 가운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중 규모가 가장 큰 국보 제6호 '중앙탑'이 우뚝 서있다. 충주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삼국 모두 국토 방어의 전진기지로 중시해왔다. 통일신라 원성왕(재위 785∼798)이 나라의 중앙을 측정한 끝에 이곳에 탑을 세워 표를 했다는 설이 전해 온다. 탑 벽면에는 '안반내'라는 지명이 있는데 '반내(半川)'는 남북의 끝으로부터 반이라는 뜻이다. 본래는 '한반내'로 이는 한국의 반, 곧 중앙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웃한 월악산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면 한반도가 통일 된다는 말도 전해 오고 있다. 마침 충주 댐이 완공되면서 월악산 그림자가 물에 뜨기 시작한다고 한다. 중원을 향한 국민들의 간절하고 정갈한 마음이 모여 든 것이다.

외갓집은 충주 성내동으로 다정한 동무인 '천구'의 고향이기도 하다. 가흥은 아버님의 고향으로 경상도에서 7대조께서 기근을 피해 가솔을 이끌고 입향 하신 터이다. 어릴 적 아버님과 숙부님들을 따라 목계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건넜다. 늘 무거운 마음이었으니 아마도 시향을 올리러 가던 길이었을 것이다. 증조부께서는 북어 한 마리를 뜯으시면서 자주 한양까지 다녀오셨고, 아버님께서는 서울에서 유학하던 고등학생으로 당시 한강이 얼면 스케이트를 타고 아침에 한강에서 출발해 고향에 도착해 점심을 드셨다는 무용담을 듣고 자랐다. 그만큼 서울과 가까운 요충지이기에 임진란에 신립장군의 단 한 번의 탄금대 패배는 막바로 조선육군의 괴멸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도 탄금대에 오르면 왠지 모를 스산한 기운이 맴도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거란군도 세계 최강의 몽골군도 이곳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전략적인 요지이다. 수달이 많이 사는 1급수인 달래강 인근에서는 조선의 명장 임경업, 사업 형제가 태어났다. 비록 품은 뜻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충민(忠愍) 임경업 장군의 기개만큼은 '북강남하(황하, 양자강)'의 대륙을 뒤덮었다. 충주 출신 이강언 소장은 이 같은 고향의 중심의 마음을 품고 이룬 자랑스러운 무인이다.

모든 산의 잣대라는 산척면(山尺面)으로 들어선다. 산척과 제천의 경계에 하늘로 오르는 천등산, 땅에 오르는 지등산, 사람에 오르는 인등산이 있다. 높고 험함이 표준이 아닌 천지인이 하나가 되는 우주의 철리에 입각한 의미이니 가히 산의 잣대요 표준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천등산에는 천부경비가 세워졌다. 산척면민들이 결성한 '천지인성단추진위원회'(위원장 육천수)와 충주 국학원(유재희)의 뜻을 합해 충주시의 예산을 받아 천부경 비(天符經 碑)를 건립했다. 나 또한 조상님들의 마음을 따라 충주시와 산척면에 많은 강의와 글을 제공해 뜻을 북돋우었다. 이로서 하늘로 오르리라는 천등산의 소망이 완성됐다. 이왕이면 인등산과 지등산에도 그 이름에 걸 맞는 비를 세워 후손들에게 천지인 합일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당에 사는 후손들의 성스러운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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