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라 했나요.
들녘 일손 잠시 쉼을 갖는 농촌의 8월은
신작로 미루나무에서 매미소리 요란 했고,
덩달아 꿈을 키우는 젊은 열기가 후끈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초등학교 동창회,
농촌을 지키며 농사일을 거들던 친구도
객지로 나가 생활전선에 뛰어든 친구도
상급학교 진학한 친구도 격의 없이 뭉쳤다

콩나물시루 속, 빼곡했던 한 교실 친구들이
졸업사진을 찍던 그 교정에 다시 모여들었다.
구레나룻 거뭇거뭇 훌쩍 자란 친구가 새롭고
고운 꿈 꼭꼭 땋아 내린 갈래머리가 함초롬하다.

덥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장맛비인양 며칠 질금거리던 빗줄기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연일 '폭염주의보' 안내문자가 휴대폰에 뜬다. 달력에 적힌 숫자 8 밑에는 '입추'가 머쓱한지 제 몸 크기를 반으로 접은 채 눈을 껌벅인다. 미루나무 숲 매미소리 하나만으로도 더위를 한풀 식혀주던 시절이 아득하다. 늘 그대로일 것 같던 자연 현상도 세월 따라, 시절 따라 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다.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다. 졸업한 지 불과 5년 전인데 친구들의 모습은 많이도 변해 있었다. 단발머리 철부지들의 모습은 간데없고 처녀총각 티가 물씬하다. 당시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는 반수가 채 못 되었다. 두발 규제가 있어 여학생은 단발이거나 양 갈래머리를 했고, 남학생들은 대부분 까까머리였기 때문에 학생과 사회인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누구의 주선에 의해 이루어진 동창회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꽤 많이 참석한 편이다. 진학하지 못한 친구는 함께 모이는 걸 꺼려하여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정 형편상, 또는 여자아이를 밖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상급학교를 보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동창회에 얼굴도 못 내민 친구의 아린 속내는 훨씬 어른이 되어 안 사실이다.

일찌감치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화장기 도는 얼굴에 멋지게 옷을 챙겨 입고 왔다. 사회생활로 인해 한층 더 성숙해 보였다.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나팔바지에 자유롭게 장발을 한 친구가 은근히 부럽기도 했으리라. 아주 오랜만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하나하나 사진 속의 얼굴들을 들여다본다. 귀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쌉싸레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머문다.

흑백 사진 속의 목조 교실은 허물리고 아이들의 숫자도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교정은 예쁘장한 현대식 모습을 갖추고 손짓을 하지만, 지금은 올 학생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 전교생이 그 당시 한 학급 수보다 적다. 그나마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아니면 학교가 유지되기 어려운 실정에 이르렀다.

베이붐 시대의 시작점이 되었던 이들이 정년퇴직이란 이름으로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이들이다. 본능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들이 뙤약볕 아래서 건들팔월 걷고 있다. 우당탕 퉁탕 교실 마룻바닥에서 짓 뒹굴던 그때가 그립다. 아이다운 아이, 운동장에서 땀과 함께 흙강아지가 되어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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