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 종성아! 10년간 외롭고 힘든여정 함께 못해 미안해"

2009년 직지원정대가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네팔 히말리야 히운출리. /직지원정대 제공
2009년 직지원정대가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네팔 히말리야 히운출리. /직지원정대 제공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산쟁이들은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등반이 시작된다고 말해요. 준영이와 종성이가 히말라야 히운출리 직지루트 개척을 위해 지난 2009년 집을 나선 이후 10년 만에 돌아오는데 그 힘든 여정,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 입니다."

2009년 직지루트 개척을 위해 네팔 히운출리(6천441m) 등반길에 오른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당시 42세) 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10년 만에 발견(5천400m 지점)되면서 당시 등반을 함께 했던 김동화 직지원정대장이 가슴 한곳에 묻어두었던 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히운출리 등반을 위해 베이스켐프를 차리고 며칠 동안 반대능선에 있는 타르프쿨리를 오르며 고산적응 훈련에 들어갔어요. 준영이는 그해 스판틱이라는 곳에서 고산적응을 마쳤고 종성이는 네팔 오지탐사를 다녀온 상태라 컨디션이 좋았죠. 히운출리 북벽은 직각에 가까운 빙벽이 끊임없이 이어진 곳이라 굉장히 험한 산으로 악명 높았지만 워낙 기술 좋은 친구들이라 성공을 자신했죠."

적응훈련을 마친 민준영·박종성 대원은 9월 23일 오전 9시, 직지루트 개척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 셰르파를 동반하지 않고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나가는 등반방식인 알파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은 3인 1팀으로 2개 루트정복에 나섰다. 

민준영(왼쪽)·박종성 직지원정대원이 지난 2009년 9월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 신루트 개척에 앞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직지원정대 제공
민준영(왼쪽)·박종성 직지원정대원이 지난 2009년 9월 히말라야 히운출리 북벽 신루트 개척에 앞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직지원정대 제공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돌아 올라가는 A팀은 1박2일만에 산사태를 맞고 더 이상 진행이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철수했고 준영이와 종성이가 속한 B팀은 한 친구가 중도 하산했지만 둘은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갔죠."

절벽에 매달려 비박을 반복하는 극한의 등반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훈련된 이들이었기에 루트정복은 순조로울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등반 셋째날인 25일 오전 5시 30분께 "출발하겠다"는 짧은 교신을 끝으로 이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출발교신, 중간교신, 저녁교신 등 기본 3번 이상은 본부와 연락을 취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오전 이후 연락이 계속 없었어요. 그래서 크럭스(등반 중 가장 힘든 부분)를 넘느라 무전을 못 받는구나, 아니면 무전기를 떨어뜨렸나하는 걱정은 했지만 변을 당했을 거라고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죠."

베이스캠프에서 밤새 무전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다음날 대원들은 사고를 직감하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2010년 추모단을 꾸려 네팔 히운출리를 재방문한 직지원정대 모습. /직지원정대 제공
2010년 추모단을 꾸려 네팔 히운출리를 재방문한 직지원정대 모습. /직지원정대 제공

"대사관, 충북연맹, 네팔 현지 대응팀 등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연락을 취하고 수색요청을 했어요. 그리고 급한 마음에 저랑 한 대원이 산을 올랐죠. 3~4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2시간 만에 올라 흔적 찾기에 나섰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날씨 탓에 쉽지 않았죠. 수색 중 고산가스가 공기 중에 차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돼 위험한 상황도 맞고 하다 보니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동료와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직지원정대는 다음날 셰르파를 고용해 수색작업을 이어갔다. 또 헬기를 빌려 공중수색도 진행했다.

"헬기를 타고 수색하는 과정에서 대원들 발자국이 발견됐지만 그 이상의 단서는 찾지 못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히운찰리 북벽 반대편 능선인 대우랄리롯지 지역 쪽도 수색을 해봤는데 3일 만에 내려온 수색대도 준영이와 종성이를 발견하지 못했죠."

10월 3일까지 이어진 수색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히말라야에 동료를 묻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동화 직지원정대장. /신동빈
김동화 직지원정대장. /신동빈

"동료를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은 산악인들에게 가장 큰 아픔이에요. 쉽게 다시 올 수 없는 곳이기에 안타까움은 더 컸죠. 이듬해 추모단을 꾸려 방문할 만큼 그리웠던 동료들이지만 그때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미안한 마음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직지원정대에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은 올해 8월 초였다. 네팔 현지에서 직지원정대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12일 네팔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 중 배낭 레인커버가 있는데 종성이가 직접 쓴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는 문구가 그대로 새겨져 있어요. 등반 당시 이 배낭을 메고 오르는 것을 봤기 때문에 종성이가 확실한 거죠. 물론 DNA 감정 등 확인절차가 남았지만 직지원정대를 제외하곤 그쪽 루트로 산을 오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 대원일 수밖에 없어요."

10년 전 잃어버린 동료와의 재회를 앞 둔 김 대장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아끼던 동료들이 이제야 돌아온다니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루라도 빨리 따뜻한 조국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네팔로 떠난 대원들과 유족분들이 그간 외로웠을 동생들 잘 챙겨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맥주를 좋아하는 종성이, 소주를 좋아하는 준영이를 위해 제가 술 한 잔 사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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