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김홍철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김홍철

아주 먼 옛날, 게오르기우스라는 기사가 하얀 말을 타고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둡고 침울했다. 기사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이 마을에서 미친 용이 나타나 아주 끔찍한 독을 내뿜으며 사람과 짐승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왕이 용을 찾아가 매일 두 마리의 양을 바쳤지만, 양도 어느새 다 잡아먹혀 젊은 사람까지 바쳐야만 했고, 결국 나라의 공주까지 용에게 먹힐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기사는 곧바로 용을 찾아가 혈투 끝에 긴 창으로 용의 목을 깊숙이 찔러 심각한 상처를 입혀 공주를 구했다. 그리고는 공주가 차고 있던 벨트로 용의 목을 묶어 온 동네를 끌고 다녔다. 용을 물리친 대가로 왕은 기사에게 보물로 후하게 보답하고 공주와 결혼까지 제안했으나, 기사는 모두 거절하고 오로지 이 나라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꿔 달라고만 하고 나라를 떠났다. 이후 기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순교했다. 그 이유로 기사는 이름 앞에 성(Saint, St)이 붙어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미국식으로 성 조지(George)라고 불리게 되며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죽도록 들어왔던 이 이야기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3세기 후반 무렵을 살았던 한 기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창을 들고 무시무시한 용을 물리친 백마를 탄 기사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해 동화뿐만 아니라 노래와 영화 그리고 르네상스 회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백마 탄 기사 이야기는 뭔가 마무리가 아쉬웠는지 둘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버전으로 여러 장르로 각색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건축에도 그 이야기를 담았다. 성 게오르기우스를 이름을 빌려 지은 성당이나 교회 건축물이 아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이다. 이름하여 카사 바트요(Casa Batll?). 스페인 말인 카사는 집이고, 바트요는 사람 이름이다. 즉, 바트요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집은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보게 될 건축물 중 하나인데, 해골과 등뼈 모양으로 보인다고 해서 뼈로 만든 집이라고도 불린다. 자신이 짓는 집 모두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짓기 위한 실험 과정이라고 여겼던 가우디는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성 게오르기우스의 이야기를 카사 바트요에 담아냈다. 카사 바트요 옥상에는 구불거리는 용이 십자가가 끝에 달린 창 형상을 한 굴뚝에 꽂힌 채 옥상에 바짝 엎드려있다. 그 밑으로 반짝거리는 작은 타일 조각을 붙여 용의 비늘처럼 만들어 날씨와 태양의 변화에 따라 건물의 색이 달라 보이는데 마치 용이 살아있는 듯하다. 건물의 발코니는 용에게 잡아먹힌 희생자의 유골이 연상이 된다. 언뜻 보기에 기괴해 보이지만, 건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한 편의 숨막히는 이야기를 직접 보고 있는 것 같다. 내부에는 용의 등뼈처럼 생긴 계단 난간이 위층으로 이어져 있는데 마치 용을 처치한 트로피처럼 만들어져 있어 건물주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내부 천장은 회오리 모양의 물결이 조명을 감싸고 있고, 빛이 들어오는 창은 가우디만의 독특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져 맑은 날엔 내부가 형형색색 알록달록 빛으로 번져 동화의 장소로 우리를 인도한다. 가구와 문고리와 같은 집기들도 모두 직접 가우디가 제작해서 어떤 것 하나도 직선이 없다. 더 들어가 중정을 보게 되면 하나의 푸른 바다가 이루어져 있는데, 중정의 위로 갈수록 심해의 바다처럼 짙은 푸른색으로 깊어지고, 중정에 빛을 골고루 들이기 위해 창은 아래쪽이 위쪽보다 훨씬 크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이처럼 가우디의 건축은 섬세하다. 하지만 카사 바트요는 구석구석 둘러보아도 기사와 용의 흔적만 있고, 작게나마 있을 법한 공주의 이야기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공주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어야 할 백마 탄 기사는 그렇게 쿨하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종교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여기서 볼 때 기사는 가우디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가우디는 어린시절 짝사랑했던 호세파 모레우(Josefa Moreu)에게 차인 이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생 모태솔로로 살면서 오로지 종교에 헌신하며 건축에 미쳐있었다. 아마 가우디가 모레우와 좋은 결실이 있었다면, 카사바트요와 같은 걸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라고 필자는 감히 장담한다. 물론 백마 탄 왕자도 공주와 결혼했다면 성인이 될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걸작을 만들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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