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作 의림지에서
장영주 作 의림지에서

제천은 주산 용두산이 북쪽을 틀어막고 사방 둘레로 높고 낮은 산이 둘러싼 분지로 일교차, 연교차가 심하다. 이 분지 안으로 다른 산줄기와 이어지지 않는 일곱 개의 독자적인 작은 봉우리 칠성봉(七星峰)이 북두칠성의 모습을 띄고 있다. 시가지를 벗어나도 인근의 이름 또한 자연의 기운이 그대로 서려있다. 송학(松鶴), 봉양(鳳陽), 백운(白雲), 금성(錦城), 청풍(淸風), 입석(立石), 학현(鶴峴), 수산(水山), 한수(寒水), 덕산(德山), 금수산(錦繡山), 송계(松溪), 청전(靑田) 등등. 이 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이름을 골라낸듯하다. 선조들께서는 이미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제천을 신령스럽게 설계 하신 것 같다. 우리역사 최초의 인공저수지인 의림지(義林地)는 호서 지역의 랜드마크이다. 의림지 입구에는 홍광 초등학교가 있고 교문에는 '홍익 홍광(弘益弘光)'이라는 웅장한 표지석이 있다. 홍익인간이란 또한 사람에게 명한 하늘의 뜻이다. 시장을 역임한 당시의 최명현 동창회장의 노력으로 영원한 뜻이 돼 우뚝 서있다. 그러나 일제에 가장 먼저 무장 항거한 제천은 저들의 잔인한 복수전으로 지도에서 사라졌을 정도로 완전히 파쇄된다.

의림지는 모든 제천인의 자궁으로 나와 친구들이 헤엄을 완성한 곳이다. 그 곳은 환상과 신화가 혼융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으나 이제는 정원의 연못처럼 변했다. 정다워지기는 했으나 다시는 신화를 잉태할 수 없는 돌의 자궁이 돼 버렸다. 소년들은 작은 못에서 개헤엄을 마스터하고 큰 못으로 진출 할 때면 이미 수염 거뭇한 중학생이 돼 바야흐로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어른들의 세계로 한발 짝 들어선다. 어느 여름방학, 해국이가(명복을 빈다) 햇살을 튕기며 휘파람 나직이 거쉬인의 섬머타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물비늘처럼 의림지의 수면위로 번져가자 갑자기 우리의 의식도 확대되었다. 그 노래는 우리도 이제 어른이라는 선언과 동시에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잃어버린 왕국'을 위한 진혼곡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탑들이 있다. 탑이란 얼마나 숭고한 '돋움'인가! 제천의 장락(長樂)들판 가운데는 '장락탑'이 있다. 논 사이로 흠뻑 먼지를 쓴 채 한 맺혀 차마 명줄을 놓지 못하는 노파처럼, 이미 속살 보인 여인네처럼 비틀거리며 신라이후의 세월을 겪어왔다. 6·25동란에 포병의 과녁이 되었기에 탑신에 허물어진 포흔이 두 서너 곳 있었다. 그 쇄락한 모습위에 '길고 긴 즐거움의 탑'이라는 이름이 오버랩 되다가 눈자위 뿌옇게 사라진다. 30년이 넘은 가슴속의 낡은 지도로는 이미 찾을 수 없는 길을 친구 '교창'이 안내해주었다. 마침 봄비 촉촉이 내리고 배꽃 흐드러진 길엔 뻐꾸기 소리가 번지고 개울위로 옥녀봉이 비껴있다. 아! 이것이 바로 긴 즐거움, 장락이로구나.

자리끼 꽝꽝 얼고 삭풍이 밤새 문풍지를 가른 아침, 찬란한 백설의 반짝임이 온 누리를 거울처럼 비춘다. 장다리꽃 피어나는 봄 들녘으로 솟아오른 종달새 울음, 하소리 맑은 물에서 싱싱한 낙엽송 같은 푸른 여름의 벌거벗은 몸들. 사과나무위로 빨갛게 다가와 쏜살처럼 지나치던 가을들, 다시는 갈 수 없는 어린나라, 제천의 사계절과 이것들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 그 모습을 지켜주는 대기, 산의 정령, 물의 긴 숨이여. 아름답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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