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추억의 맛은 잊혀 지지 않는 그리움이다. 특히 엄마의 떡 맛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연륜이 들어있다. 떡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떡 맛과 떡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우리 쌀을 이용한 떡 전문가과정 교육이 선물처럼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우리 지역 청원 생명쌀을 이용해 떡을 만들고 전통음식문화를 계승하자는 취지를 가진 농업기술센터 프로그램이다.

전문 교육으로 농촌여성의 자격증 취득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전주 우리 떡 만들기 연구소 명인의 가르침을 받으니 전통을 배우는 자부심마저 생겼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이론과 실기시험을 통해 떡 전문가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닌가. 우리 떡을 쉽고 예쁘게 정갈하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우리 민족은 명절 뿐 아니라 좋은 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떡을 해서 돌리거나 축하하였다. 낙랑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원시농경시대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음을 미루어 볼 수 있다. 쌀을 으뜸으로 콩이나 팥 등 다양한 곡식을 가루내어 찌거나 삶거나 기름으로 지져서 시루떡, 인절미, 송편, 화전, 경단등 다양한 먹거리로 떡을 만들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을 마칠 때까지 거치게 되는 중요한 통과의례에도 떡이 빠지지 않았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백일 떡은 백 사람과 나눠 먹어야 명을 사서 백수까지 산다는 기원과 함께 아기의 무사함과 무병장수를 바랬다. 돌잔치를 비롯하여 백설기와 팥 수수경단을 나누고 회갑연 등 각종 기념일에 없어선 안 되는 음식이 바로 떡 이었다. 명절음식 중 빠질 수 없는 새해 첫날 밝음의 표시로 하얀색 떡국을 먹고 나서야 나이도 한 살을 먹었다. 나 역시 어릴 땐 빨리 한 살이라도 더 먹고 싶어 설날 떡국을 억지로 더 먹곤 했다.

정월 대보름에 태어난 생일에 찹쌀을 찌고, 밤·대추·꿀·참기름·간장 등을 섞어 잣을 박은 약밥과 오곡밥을 해 주시던 어머니께 쌀밥 달라 우기던 어린 시절 투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가위 추석에는 온 가족이 송편을 빚어 일가친척들과 더불어 이웃과 나누었다. 잔칫집에서 손님에게 싸서 보내는 봉송이 있을 정도로, 떡은 나누어 먹는 가장 주요한 우리 고유의 풍습이다. 일찍부터 나눔의 미학을 체득하며 살았던 우리 민족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다.

K팝, 한류드라마가 전 세계에 인기를 끌면서 한국 음식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음식으로 알려진 김치, 불고기, 비빔밥위에 '우리 떡의 세계화'를 기대한다. 세계인들의 입맛을 향해 은근하여 질리지 않고 자극성이 적은 건강에 좋은 우리 떡을, 재료와 배합하여 다양한 조리 방법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의 명품 떡을 알려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그리스도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이다. '집'이란 뜻의 벧트와 '떡'이란 뜻의 레헴. 두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 떡집. 이처럼 개인의 이름을 내 건 명품 떡 프렌차이즈. 우리의 전통 먹거리 떡 카페가 곳곳에 생겨나 아침 식탁위에서 우리 떡이 밀가루 빵을 이기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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