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햇볕이 뜨거운 여름철 복중 장날에 삿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에 여름버선을 신고서 말가웃짜리 쌀자루등짐을 지고 시오리 장 길을 나서다가 이웃동네의 장꾼들을 만나 길벗 되어 같이 걸어간다. 치켜다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숨차게 넘는데 옆에서 같이 가던 장꾼이 '먼 길 가는 것 같은데 그런 차림이면 덥지 않겠는가?'하고 말을 건다. '복중인데 어디 나만 덥겠는가? 그래도 여름엔 그늘이 두꺼워야 시원하지.'

털이 북슬북슬한 면양들이 한여름에 풀을 뜯을 때도 무리를 지어 서로 붙어 다녀야 시원하다고 한다. 그늘(陰地)이 흐린 곳에선 개도 쉬지 않는다고 한다. 동네쉼터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 그늘의 중심부와 가장자리의 기온차가 여름철엔 2~5℃ 차이가 난다고 하니 그늘이 두꺼워야 시원하단 말이 이해가 간다.

쉬 이해될 것 같지 않는 말 '그늘이 두꺼워야'라 함은 다양한 내공이 쌓이면, 공감하는 이가 많으면, 환경에 잘 적응하면, 큰 뜻을 세워 밀고 나가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 보다 큰일을 성취하고 싶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한 두껍게 차려야한다는 말일 것이다.

종기가 빨리 나으려면 고름집이 커야 하고, 가수가 되려면 울음소리가 커야하듯, 초가집은 지붕이 두터워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그래야 업(業)도 들어와 좌정한단다. 수양산 그늘(仁者 德性)이 강동 팔십 리를 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두터운 그늘은 항상 믿음이 가니 찾는 이들이 많고, 덕이 넘치니 웬만한 것은 다 끌어안고, 세상의 어떤 어려움을 이고 지고 들고 메고 와도 다 헤아려 풀어주니 고마움만 넘쳐난다. 그래서 그 아래선 항상 행복하단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태풍 몇 개 이름 달고 입추와 말복에 처서까지 지나니, 두터운 다양한 그늘 덕에 금년의 더위 행차가 대과까지 다 품고서 강동 팔십 리를 지나 팔백 리를 넘어가니, 두터운 그늘의 강냉풍 에어컨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런 탓인지 요즘엔 두터운 그늘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워 세상 살기 힘들다고 경세가를, 어지러운 국제정세에 침전물마저 뒤집혀 평정이 안 된다고 정세의 대가를, 보통의 상식을 뒤집어 집도자의 마음대로 엮어 놓으니 민관소통이 잘 안된다고 정장(整腸)의 명의를, 저마다 사관이라 정사가 잡히지 않는다고 잡사들의 통제사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진다는데 지도층 인사가 자신의 부정행위 합리화에만 집착한다고 본심성정 안정의 대가 출현을 애타게 갈망하고 있단다.

수신제가를 잘하면 가화만사성하여 치국평천하도 할 수 있다는데, 그 기초인 사람다운 사람 되기(修身)도 안 되어 집안 살림(齊家)도 제대로 못했으면서 나라살림(治國)을 하겠다고 껍적거리니 지적된 흠결들을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사람다운 쓸 만한 일꾼이 그렇게도 없느냐며 개탄을 하기도 한다. 적어도 상식인은 되어야 하는 건데.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 어른들에게선 배울 게 없다고 어른들을 무시해도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치려 들지도 않는다. 어른이 언행일치가 안되니 자라나는 아이들은 심지어 자기부모의 어떤 말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두터운 그늘 만들어 편히 살게 해보자고 제안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