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지효 문화부장

선거철이 다가오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정치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얼굴도 내비치지 않던 곳인데도 이때가 되면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큰 행사의 경우 1천여명 이상이 모이는 음악회장은 특히 더 그렇다. 평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야 시기에 관계없이 수시로 찾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인사들이다. 그러나 이해도 된다. 월간 캘린더를 빽빽하게 채우는 수많은 음악회에 모두 참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지난 15일 광복 74주년 기념음악회가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음악회는 충북예총과 충북민예총이 공동으로 '내일을 향하여'란 주제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라포르짜 오케스트라와 국악관현악단 더불어 숲이 함께하는 연합오케스트라를 구성했고, 충북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합창단들이 연합합창단을 꾸렸다. 충북의 소리꾼들이 나와 외친 '열사가'와 테너 오종봉과 서일도 소리꾼, 일루미나 퍼포먼스팀이 함께한 '천둥소리', 사물놀이의 신명을 보여준 '신모듬', 퉁소와 플룻의 조화 '종횡무진', 연합합창단이 장식한 마지막 무대 '충북의 함성'까지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되새기는 소중한 자리였다. 마지막 연합합창단 무대장치의 문제로 약간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음악회는 잘 끝났다.

그런데 문제는 음악회 막이 오르기 전부터 시작됐다. 오후 7시30분부터 예정된 음악회는 사회자의 안내와 함께 5분 지연 후 시작됐다. 혹여 '5분 늦게 시작하면 뭐 어때?'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특정인 때문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시작이 5분 늦어진 것은 행사후원을 한 충북도의 수장 이시종 도지사가 조금 늦게 공연장에 입장했기 때문이다. 이날 객석을 가득 채운 도민들은 1천450명. 그 많은 인원이 한사람을 기다리기 위해 각자의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5분이란 시간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 관객 전체를 생각해보면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닌 것이다.

이지효 문화부장.
이지효 문화부장.

더 큰 문제는 음악회 중간에 자리를 함께한 주요 인사들을 소개하는 의전이었다. 물론 이시종 도지사와 이번 행사를 주관한 충북예총과 충북민예총 대표들을 소개하는 것까지는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서 이날 참석자 명단에 올랐던 충북도의원들을, 그것도 하나하나 호명하며 인사시키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까지도 거명하면서. 더구나 한 섹션의 공연이 끝난 후 앞서 소개하지 못한 누락된 도의원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한 순간에 음악회장이 정치인들의 얼굴 알리기 장소로 전락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음악회 참석 시민들은 하나같이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시작 시간을 약속했으면 누가 왔든, 안왔든 제 시간에 시작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 약속의 의미가 없다. 그래야 다음번에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또 "평소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다가 선거가 다가오니 얼굴 알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 같은 상황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매번 되풀이 된다. 따라서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음악회 주최측에서도 의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관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덧붙여 자치단체장이나 정치인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선거철에만 움직일 것이 아니라 평소에 시민·도민과 스킨십을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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