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최익성 경영학 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

회의를 진행하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자유로움이 가득한 회의를 만들 수 있다. 공간은 상황을 바꾸고 상황은 행동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일반적인 회의공간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회의장에서 사람들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회의 참석자들을 생각해보면 누구는 여기 앉고 누구는 저기 앉고, 최고 높은 분은 어디 앉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회의장은 공간 그 자체에서부터 상석이 정해져 있다. 물컵이 유리컵이야 종이컵이냐, 컵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 등만 보더라도 이미 상하가 구분 되어있는 듯하다. 격식과 권위를 내려놓을 때 회의 분위기는 자유로워진다.

공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리 장군이라 해도 회의에 늦어 입구 근처의 빈자리에 앉았고 그 사람의 뒤에 커피포트가 놓여 있다면, 회의 내내 커피 시중은 장군의 몫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형식의 파괴(Informality)이다. 거추장스러운 형식의 파괴는 창조경제·창조경영의 환경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통적으로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어른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우리의 정신적 유산은 기업에서도 여전히 관료적이고 상명하복의 문화를 은근히 조장하는 상황이다. 많은 조직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주창하고 있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나 그 이전 세대보다 더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의 변화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필자가 자문하고 있는 한 회사의 회의장은 조금 특이했다. 우선 상석이 없었다. 최대한 원탁 테이블로 상대방과 떨어진 거리도 다소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은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었다. 의자도 조금 불편했다. 주변에는 여러 색상의 소파가 있었다. 의자가 불편한 이유는 오래 앉아서 이야기를 반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소파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회의의 상황을 바라보라는 뜻이라고 들려주었다. 뭔가 조화롭지 못한 다양한 색상은 오히려 관점의 다양성을 이해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회의장 하나에도 새로운 의미와 다양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어서 무척이나 신선했다.

최익성 경영학 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br>
최익성 경영학 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

'순자'에는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 백사재날 여지구흑(白沙在涅 與之俱黑)'이라는 말이 있다. 옆으로 자라는 쑥도 삼 가운데서 자라나면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도 갯벌의 검은 흙 속에 있으면 검어진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간을 바꾸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선진기업들은 업무 공간의 창의성 추구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대부분 격식을 차리지 않는 공간만을 표방하거나, 보이는 것의 화려함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공간의 팬시화, 다양화에 그쳐서는 안된다. 회의 공간도 표면적으로는 감각적이지만, CEO나 담당 부서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지, 실제 회의 성격이나 조직원 요구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회의 공간은 창발형 공간(Space of Emergence)이 되어야 한다. 관리와 통제의 끈을 놓고, 회의 참여자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공간이 연출되어야 한다.

회의장 내에 격식을 상징하는 도구를 제거하라. 높은 의자, 별도의 테이블, 직급·직위를 상징할 수 있는 명패 등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회의장에 없는 것이 좋다. 회의는 누가 더 높고 낮은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닌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테이블과 의자 등은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움직이기 편하도록 가볍고 다양한 배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좋다. 필자는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모듈식 테이블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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