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의 수필가

어제부터 세찬 비가 내리더니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말라 있던 집 앞 농수로에 물이 고였나 보다. 두어 마리 울음소리가 끊일 듯 이어진다. 도시에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반가워 창문을 활짝 열고 둔탁한 저음의 소리에 끌려간다.

계절은 이미 여름에 와 닿았다. 비 온 뒤라 바람도 끈끈하고 습하다. 개구리는 초저녁에 울기 시작하여 밤이 깊으면 그치는데 지금은 한밤중이다. 자연의 섭리를 잃은 도시의 이방인 개구리 울음소리에 나는, 덥고 습한 여름 밤도 행복하다.

갱년기 불면증으로 긴 밤을 견디는 동안 괴로운 소리는 자동차였다. 외곽도로라 속도도 빠르고 신호등이 없어 쉼이 없다. 날카로운 자동차 소리가 익숙할 때쯤, 에어컨으로 연결된 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시계 초침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소리는 인공조명과 함께 감각공해다. 매일 밤소리에 지치고, 물소리에 끌려가고 시계 초침 소리를 더하고 세어도 시간은 느렸다.

그러나 오늘은 개구리 울음소리로 기분 좋은 밤이 되었다. 어떻게 왔을까. 별안간 많은 비가 내리자 어린 개구리는 물살에 휩쓸렸을 것이다. 낯선 환경이 두려운 개구리는 혼자 울다가 근처에 같은 울음소리를 듣고 또 울었으리. 서로를 확인하며 우는 소리는 구애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두려움이 가득 묻어있다. 낮고 힘이 없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따라 마음은 농수로로 간다.

농사짓던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농수로는 기능을 잃었다. 한때는 넓은 들녘으로 힘차게 흘렀을 물의 깊이를 물이끼로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생활 쓰레기가 뒹구는 공간으로 방치되었다. 물이 고이면 악취도 날 수 있다. 하필 이사 온 곳이 더럽고 아파트 가까이 있어 불안하고, 자연을 훼손하고 서식지를 빼앗은 터에 이사 와서 더 미안하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자연 속 동물이 개구리만 있을까. 도시가 개발되면서 둥지를 오가던 길이 사라진 백로도 근처에 산다. 송절동 야산에 터를 잡은 백로는 이른 아침 무심천을 향해 날아간다. 테크노폴리스 단지 내에 아파트가 생기기 전까지는 여유로운 날갯짓이었을 것이다. 창공은 무한하고 들녘은 안전했으며 길은 자유로웠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백로가 날아다니는 길은 좁아졌다. 고층 아파트 사이를 넘나드는 위험과 모험을 해야 하고 사람들 삶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와 소음도 견뎌야 했다.

가장 안전한 공간은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자투리 땅이다. 하얀 비닐하우스 위로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 백로의 무희를 내 집 창가에서 보는 나는,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백로의 날갯짓을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무리 지어 날아가기도 하고 둘 셋씩, 혹은 홀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근처 무심천이 새롭게 와 닿는다. 물은 흐르면서 생명을 품는다. 백로는 날아가면서 물을 찾는다. 동트기 전 어둑한 물빛은 백로들의 날갯짓으로 밝게 차오르고, 하루 햇살의 온기를 담은 무심천 저녁 물은 백로가 둥지를 찾아갈 때 제빛으로 잠긴다.

무심천 물빛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입추가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다. 이 때쯤이면 백로들도 높이 난다. 날갯짓은 하늘과 가까이 닿고 무심천 물은 땅 빛을 잉태하며 가을을 맞는다.

고요한 저녁, 하얀빛이 창을 스치고 지난다. 백로가 돌아오는 시간이다. 바람에 흰 종이가 날아가는 듯 멀어지는 새도 아름답고 창가에 부딛힐듯 가까이 날아오는 담대한 용기에도 응원한다. 날갯짓이 힘겨운 백로도 있는가 하면 퍼덕이는 소리가 힘찬 모습을 보며 나의 하루와 겹친다. 무사한 안부를 묻고 잘 가라고 인사도 하고 내일 아침을 약속하기도 한다. 한 시간 남짓 백로의 이동을 보면서 자연과의 인연에 감사한다. 이사 와서 만난 만족이고 새로움이다.

백로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심천은 변함없이 흐르지만 테크노폴리스 단지 개발은 진행 중이고 땅과 숲은 좁아지고 있다. 그래도 불안하고 위험한 도시를 날아오르는 백로의 힘찬 날갯짓은 희망이다.

개구리 울음소리도 자연이 보내는 메신저다. 사람들 사이로 이사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환경을 지켜달라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개구리가 우는 낭만의 밤과 아름다운 가락을 함께하려면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 있으면 보이고 사랑하면 행동한다.

그런데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벽이 오는 시간이 가까워서 일까, 이사 온 곳이 안전하지 않은가. 내일 밤을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긴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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