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살다보면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지'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지' 철학적인 사유와 마주한다. 이 질문으로 사람에게 사는 일과 먹는 일은 삶의 과업이고 분리될 수 없는 합일임을 인식하게 된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삶의 경험치 덕분에 먹는 일이 질리지 않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며 맛을 즐긴다. 퇴직 후 요즘 나는 '오늘 저녁 땟거리는 무엇으로 준비하지'라는 현실적인 사유에 직면하며 산다. 내가 자발적으로 교직에 몸담고 있는 아내로부터 전업주부권을 인수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전업주부 되기는 끼니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해가 뜨고 지면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끼니마다 어떤 찬거리를 마련할지가 첫 고역으로 다가왔다. 끼니마다 찬거리를 챙기는 일이 예삿일이 아님을 체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적들과 싸우는 일보다 병사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더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아사(餓死)의 궁극을 떠올릴 만큼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끼니를 챙겨 밥상을 차리는 일은 생존의 젖줄이다.

퇴직 후 끼니마다 밥상을 대접받고 싶다면 아내의 눈총을 피하기 어렵다. 마음씨 고운 아내라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 드는 삼식이에게는 비호의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삼식이 신세를 탈피하기 위해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요섹남'으로 살아가려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내들이 삼식이를 왜 싫어하는지 내가 끼니를 챙기는 초보 셰프 입장이 되고 보니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요섹남'으로 살아가기 위해 레시피, 설거지와 관련된 지식을 학습하는 일도 만만찮다. '고기류와 과일류를 사용하는 도마의 면을 달리 해야 된다는 것, 뜨거운 반찬을 냉장고에 넣을 때는 반드시 식혀야 한다는 것, 음식을 튀기는데 사용했던 식용유는 배수구에 버리면 안 되고 일반쓰레기로 처리해야 된다는 것, 도자기류 그릇을 세척할 때는 절대 철 수세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프라이팬을 사용할 때 철 뒤집개로 박박 긁으면 안 된다는 것' 등은 내가 아내의 잔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전수받은 전리품들이다.

끼니마다 밥상을 차리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삶의 근간이 되는 밥상에는 생존, 건강, 행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식도락가가 아니어도 먹을 때는 즐겁고 행복하다. 요리 초보자인 내가 만든 음식을 아내가 "맛이 참 좋네요."라며 맛깔스럽게 먹을 때 행복해진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머리에서 깔짝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내의 지지와 격려의 말에 자신감이 생겨 다슬기국, 청국장, 뼈감자탕,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등의 레시피에 도전하며 '요섹남'으로 사는 것도 재밌다. 오늘 저녁은 어떤 레시피로 아내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궁리하는 시간도 내가 누리는 소소한 기쁨이다.

셰프급 '요섹남'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살림살이에 괜히 전업주부권을 인수받겠다고 호기를 부린 것은 아닌지 심란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냉장고와 서랍장은 어떻게 정리할까를 떠올리는 내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전업주부다. 초보 전업주부인 나의 시행착오는 오늘도 계속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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