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청주대학교 산학협력단장·충북산학융합본부 원장

자유무역주의를 지탱해온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메커니즘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에 의해 정립되었던 비교우위론은 교과서에서나 찾아봐야할 모양이다. 비교생산비에 의한 생산의 특화와 자원의 최적 배분 논리는 한 국가나 개인의 정치적·자의적 판단, 즉 '보이는 손'으로 인해 힘을 잃었다. 세계 경제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정한 국가나 정치인의 몽니 때문에 우리나라와 지역경제가 위협받지 않을 만큼 내실을 기해야 하는 엄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주변의 요동치는 환경을 담아낼 새로운 지역산업정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은 궁극적으로 지역경제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기존 대량생산방식이 쇠퇴하고 지역기반, 개인맞춤형 생산방식이 보다 우세해지는 까닭이다.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제품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지역경제 단위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산업정책을 재정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금과옥조로 믿어왔던 경제 원칙을 교정하는 일이다. 당면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더욱 그렇다. 소재분야는 원천기술에 기반하고 있어서 투자 회수 기간이 길다. 위험요인도 많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분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수요처인 대기업과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에서 기술축적 시간이 긴 중간재보다 최종 완제품·조립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추구했다. 수출주도 압축 성장에 최적화된 산업구조를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조립가공에 집중했다. 그렇게 일본과의 분업구조가 형성됐고 갈수록 의존관계는 심화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제조업 수출경쟁력 점검과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천대 제조업 수출상품군 가운데 '품질경쟁력 우위'로 분석된 것은 총 156개였다. 일본(301개)의 51.8%, 독일(441개)의 35.4% 수준이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제품은 수출경쟁력이 미흡하고 기술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근호 청주대학교 산학취창업본부장
노근호 청주대학교 산학취창업본부장

이와 관련 일본 기업의 특장점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발간된 '일본 초격차 기업의 3가지 원칙'은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서 부활시킨 주역들의 생존 비결에서 공통점을 찾고 있다. '당연한 것을, 멈추지 않고, 제대로 하는' 기업군으로 정리된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혁신하고, 조급함과 '손실 회피' 본능을 넘어서며, 조금 더 잘하는 것에서 제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용 로봇 세계점유율 1위 화낙(FANUC)의 경영원칙은 '엄밀(嚴密)'로 표현된다. 뻔한 얘기지만 우리는 소홀했던 기본일 수 있다.

고전파 경제학의 자율적 시장 기구에 의한 메커니즘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이론이 케인스 경제학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현재 각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기존 수입의존-수출확대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강소기업을 키울 에코시스템과 인내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협업시스템을 굳건히 하면서 지역대학들과 함께 맞춤형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보강해야 한다. 제조업 성장 둔화가 지역경제 침체를 야기하고 지역산업의 연관성·다양성 미흡이 경제 활력을 저하시켜 성장경로 고착화의 원인이 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불확실성의 파고를 극복할 기업가정신 함양도 긴요하다. 현안인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품질경쟁력 제고 방안을 포함해 지역산업정책의 새 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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