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이태동 음성 감곡초

검은 뿔테의 안경, 작은 체구에 적당한 얼굴 주름, 갸름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노인, 7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보기와는 달리 젊은이들이나 착용할 앙증맞은 앞치마에 스스럼없이 손님 사이를 오가는 그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카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손님맞이하는 그의 매너에 친근감이 물씬 풍겨 온다.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친구 분과 함께 오셨어요?",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기분 좋은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긍정적 질문이 쏟아진다. 손님이 무얼 주문할지 망설이는 동안 기다릴 줄 알며 웃음으로 답해 준다. 내 생각으로는 나이 들어서까지 왜 힘든 카페를 운영하며 고생할까 싶다. 그러나 카페를 한 발자국만 더 들어서면 곧바로 다른 생각으로 바뀐다. 기대이상의 많은 책에 놀라고 오롯이 피어나는 문학적 향기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곳곳에 좋은 글귀와 그림, 생활 속 소품이 진열되어 있다. 젊은 눈높이에 맞춰 역동적으로 사는 그의 모습과 철학이 부러울 정도다. 그런데 뜻 밖에 발견되는 한 가지 '정의롭게 살자!'라는 낡은 슬로건, 그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화두다.

그는 매일 그의 가게 앞을 지나는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정류장 손님들의 활기찬 모습을 본다. 그들을 통해 삶의 에너지도 얻지만 한편, 무심코 던지고 가는 쓰레기와 담배꽁초 줍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그의 하루 중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란다. 찻값이 무려 20%나 싸 매력적이고 실내 분위기 또한 손님들을 압도하지 않아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 팝송, 춤곡, 대중가요를 손님 입맛에 맞게 틀어주고 문학인들이 모여 자주 시낭송을 하며 열띤 독서토론회가 열렸으니 가게를 혼자 운영하기엔 보통 바쁜 공간이 아니었으리라.

이태동 음성 감곡초 수석교사
이태동 음성 감곡초 수석교사

나이 들어가며 '늙는다'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부드러움이란 무엇인지…. 선부지설(蟬不知雪)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매미는 '눈(雪)을 알 수 없다.' 한 철 살다 떠나는 매미가 어찌 겨울에 내리는 눈을 알 수 있을까. 손님 하나하나마다 눈을 마주치고 반갑게 맞이하던 그 카페 주인, 다수를 위해 자신의 일을 진정 즐기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나이 들어 권위나 명예에 연연해하는 세태에서 그는 '사랑의 카페'를 통해 마을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 준 천사였다고.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힘들 때나 기쁠 때 부담 없이 사람들이 모이던 곳, 그래서 더 넉넉함으로 다가갔던 낮은 자세의 노인, 잠시 나도 저 나이쯤 저렇게 곱게 늙어 갈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사람은 태어나 세상을 잠깐 여행하고 간다는 사실을 그 노인은 이미 깨달은 듯 했다. 소소한 일에 자존심 내세우는 보통사람들에 비하면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어른이었다. 마을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그의 말대로 가게 이름도 '크리스마스(christmas)'! 우연이었을까. 카페를 나오며 교육은 '한 마을 사람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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