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의 제5차 사료조사 과정에서 촬영된 유리원판 사진으로 가운데 하얀 길은 당시에 탄금대로 난 신작로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총독부의 제5차 사료조사 과정에서 촬영된 유리원판 사진으로 가운데 하얀 길은 당시에 탄금대로 난 신작로다.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충주지역 향토사학회인 (사)예성문화연구회(회장 길경택)가 충주외성이 있던 위치를 찾아냈다.

충주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 사진 중에 '충주읍외(忠州邑外) 토성벽(土城璧)'으로 이름이 붙여진 사진이 토성의 존재를 실증해 주는 자료로 남아있다.이 사진의 토성벽 뒤로 보이는 산의 능선을 두고 사진의 위치와 지점을 추정하기도 했다.

(사)예성문화연구회는 그동안 충주시내 지적도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해당 사진의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예성문화연구회에 따르면 1914년 11월에 충주시내 17개 리동(里洞)에 대한 지적측량작업이 시작돼 470여 매의 지적원도가 생성됐고 그 중 사진에 해당되는 지점은 용산리(龍山里) 원도 25매 중 19호 도면과 봉방리(鳳方里) 원도 30매 중 3호 도면을 합쳤을 때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도면에서 보이는 토성벽은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앞쪽은 임야로 지목이 표시됐고 뒤쪽은 밭으로 돼 있다.

해당 지점은 지금의 삼원초등학교 버스승강장이 있는 곳이다.

앞의 임야였던 토성벽은 현재 고용노동부 충주고용센터 뒷편의 골목에 해당된다.

이 골목은 소위 성터지기라 불리는 농어촌공사 충주제천단양지사로 이어지고 뒷쪽의 토성벽은 삼원초등학교를 가로질러 충주천에 맞닿는다.

현재 확인된 충주외성은 사직산 서남측의 일부 구간이 2009년도에 부분 시굴됐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호암택지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토성이 발굴돼 보존 조치됐다.

충주외성은 봉현성(鳳峴城)으로도 불렸으며 두 곳의 유적을 제외한 구간에 대해서는 추정을 통해 개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도시화에 따른 급격한 공간변화로 인해 흔적을 찾기 어려운 구간이 대부분이다.

(사)예성문화연구회는 충주시와 협의를 통해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길경택 회장은 "지적도 뿐 아니라 지지류, 양안(量案), 지형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아직 확인하지 못한 충주의 각종 유적에 대한 폭넓은 접근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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