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그녀가 당황한 것 같다. 나의 오른쪽 검지로 눌러보고 돌려보고 해도 안 되니까 장지로 했다가 명지까지 대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쌤통이다."

그러나 그녀가 누군가. 이내 왼쪽 검지를 대더니 지문 인식이 끝났는지 유유히 공항 검색대를 빠져나간다. 나를 함부로 대한 것을 반성하도록 왼쪽 검지까지 지문이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흘러 애가 바작바작 타기를 은근히 바랐는데.

이런 심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표피까지 홀딱 벗겨진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몽니 부리는 것 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벗겨서 먹는 수밀도 껍질도 아니니 말이다.

내 엄지 지문이 없어진 것은 훨씬 오래전이다. 주민등록증을 처음 만들 때 젊은 여자가 지문이 나오지 않자 담당 직원이 그녀의 얼굴과 나를 번갈아 보며 어울리지 않아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차대조표의 좌우가 맞지 않는다는 듯한 그런 야릇한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에도 지문 없어진 게 별거 아니라는 듯 행동에 전혀 위축이 되지 않는 그녀였다.

8남매 중 본인을 닮은 유일한 아이라고 그녀의 아버지가 입학 전 연필을 쥐여주며 나를 애용하도록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그녀는 뭣이던지 열심히 해서 칭찬을 받는 버릇이 생겼다. 자기는 잘하는 아이라고 세뇌가 되었으니 내가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녀가 공직에 입문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 철필로 철판을 눌러 쓸 때도 그녀는 못한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나를 아프게 눌러서 등사를 했다. 계산기가 나오기 전 주판을 쓰던 시절에는 또 나를 얼마나 혹사시켰던가. 일이 많을 때는 밤 12시까지 야근을 하고 새벽 4시에 숙직자를 깨워서 또 나를 못 살게 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가사를 남에게 맡기지 않는 그녀니 내 껍질이 다 벗겨 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꼭 그녀가 나를 혹사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새침해 보이면서도 활달한 면이 있어서 악수를 잘한다. 그녀의 손바닥은 살이 적당히 있는 데다 따뜻해서 겨울에 그녀와 악수를 한 남자는 살갑다는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잊지 못한다. 두 번째 악수를 하며 "아! 이 살가움."하며 감탄하던 촉촉한 목소리가 내 귀에 지금도 아련하다. 그러할 때 나의 자존감이 되살아난다.

오래 동고동락하다 보면 증오하면서도 사랑한다고 이래저래 그녀와 나의 사이가 애증의 관계가 되었다.

나의 표피가 다 벗겨진 것은 아마 그녀의 어머니 영향이 더 클 것이다. 딸은 친정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의 어머니는 천성이 부지런해서 대가족 식사 준비를 하고 냇가에서 방망이 두드려 빨래를 하며 가마솥에 소죽을 끓여 농사를 지었다. 그 시대의 아낙들이 다 그랬듯 그녀의 어머니 역시 죽으면 썩을 놈의 살 아끼면 무엇하겠느냐는 지론으로 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를 낳을 때도 해가 질 때까지 밭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와 자주감자 한 사발을 까놓고 배가 사르르 아파서 윗방에 들어가 출산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사주팔자가 궁금할 때 출생한 시가 술시인지 해시인지 헷갈린다.

이영희 수필가<br>
이영희 수필가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도 세월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고 공직을 퇴직했다. 이제는 나도 좀 편하겠구나 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데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리타이어(retire)· 리본(reborn)을 들먹이며 여전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타이어를 갈아 끼고 달린다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니 이모작을 우습게 본 내가 바보다. 책을 많이 보는 그녀를 잠시 내가 잊었던 거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래도 그녀가 책을 볼 때 내가 편한데 미운 눈이 훼방을 놓는다. 나이 먹으면 이목구비가 차례로 나빠진다는데 책을 좋아하는 그녀라 눈이 먼저 나빠져 마음으로는 책을 보면서도 명상으로 나를 쉬게 한다. 안 그럴 수도 없는 게 눈을 걱정하는 그녀 남편이 분서갱유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그녀를 말려서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답게 별명도 에너자이저이다. 주인한테 충성을 해야지 괜스레 줄 잘못 서면 박쥐 신세가 된다고 불평하는 나를 다독인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지만 내 팔자야말로 더한데 나도 필요할 때 잘해야 되지 않겠는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고 하고 '손수 한다.' '손 아래 놓는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나름 나는 꽤 필요한 존재다. 그 대단한 나의 이름은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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