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은 28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상혁 군수는 자신의 친일망언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 김미정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은 지난 28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상혁 군수는 자신의 친일망언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 충부매일 DB

한·일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정상혁 보은군수가 엊그제 관내 이장단 200여명이 참석한 특강에서 일본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정 군수는 "1965년 한일협정 때 일본에서 받은 5억불을 마중물로 1·2차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며 "세끼 밥도 못 먹고 산업시설이 없을 때 일본의 돈을 받아 구미공단과 울산ㆍ포항 등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한국 발전의 기틀을 5억불을 받아서 했는데, 이건 객관적인 평가"라고 했다. 그는 또 "한일협정 때 돈을 준 것은 사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꾸 뭐 내놔라. 계속 사과하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경제가 충격을 받고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상황에서 정 군수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 정 군수가 특강을 통해 일본을 두둔한 날은 마침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본격 시행한 첫 날이다. 하필 이런 날 민감한 발언으로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에 불을 질렀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우리나라로 수출되는 1,120여개 전략물자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라 수출할 때 마다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된다. 특히 일본의 1차 수출 규제 여파를 피했던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이번 추가 경제보복의 주요 타깃이 될 까봐 긴장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일본산 소재 의존도는 80%에 달하고 있어, 일본이 관련 소재 수출 규제를 하면 생산라인이 단기간에 멈출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만한 국민은 다 안다. 더구나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한국 화이트 리스트 제외 조치 외에 또 다른 규제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예고돼 경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이럴때일수록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 군수처럼 공개석상에서 일본 옹호발언을 한 것은 매우 적절치 못했다.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일본에서 받은 5억 불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본 정부로부터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도 한국처럼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국가지도자의 투철한 경제부흥전략과 국민들의 근면성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세계가 놀란 압축성장을 달성했다. 또 정 군수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하면 우리가 2배는 손해를 본다"는 발언도 공감할 수 없다. 일본의 비열한 경제보복에도 마치 아무 일없는 것처럼 국민들이 일본여행을 가고 일본상품을 구매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고 외려 일본인들이 한국을 우습게 볼 것이다.

지금 한일관계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비상상황이다.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정부도 극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럴 때 자치단체장이 국민정서에 역행하는 발언을 한 것은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정 군수는 이장단 워크숍에서 일본을 두둔할 시간에 지역경쟁력 하락을 막을 대책을 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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