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연일 보도되는 일본과의 무역전쟁은 심각하다. 일본 아베의 오만한 태도가 하늘을 찌른다.

모진 고생만 하다 하늘가신 어머니 생각에 치가 떨린다. 아직도 머슴 부리듯 함부로 대하고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아간 식민지 시대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한국을 믿지 못할 나라라니. 그동안 어떤 협정을 했는지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내 어머니 시대의 저지른 과오를 들어서 아는 나는 그 뻔뻔스러운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시간이 흐르면 인간은 지난날을 성찰하고 때로는 미안함을 느끼며 뉘우치는 법이거늘 어찌 그리 당당하고 오만한 태도로 각료들과 "한국은 믿을 수 없다"로 각축 한마디 하고는 일어선다. 왜정시대 때 여성들이 왜 10대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일찍 조혼하여 내 어머니는 일곱의 자녀를 낳았으나 넷은 가슴에 묻고 셋을 키웠다. 전염병과 암울한 시대의 비위생적인 환경과 혹독한 노동 때문이었다.

딸 가진 부모는 대문 밖에 내 놓을 수가 없었다. 왜? 처녀공출에 점 찍힐까봐,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눈뜬 봉사로 살아야 했으며 데릴사위를 드려 딸을 지킬 수 있었다. 36년이란 암울한 세월은 긴 시간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농사지어 놓으면 다 빼앗아가고 알레미 쌀을 배급받아 먹었으며 초근모피도 모자라 콩깻묵을 먹었다고 말씀하셨다.

8·15 해방의 기쁨도 잠깐. 1950년 6·25전쟁으로 얼룩진 우리는 기아선상에서 허덕이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나라가 일본을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해야 될 처지이건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우리나라를 믿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나라가 힘이 없어서 일본에게 짓밟히고, 구원해 주겠다고 온 미군들에게 알게 모르게 당하고도 쉬쉬 하며 큰소리 한번 치지 못했다. 억울함을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그 부끄러운 현실을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입었던 여성들의 속옷 고쟁이의 비밀을 들었을 때 분노를 느꼈다. 치욕적인 성의 모욕을 당하고도 죽지 말고 살아야 나라를 찾을 수 있었다는 현실을 일본 놈들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음성 감곡 주천리 산꼭대기에 미군이 주둔해 있었다. 직장이 중간 지점에 있어 신작로 길을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미군 차나 트럭이 오면 오금이 저렸다. 그들은 '쏼라'거리며 여자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농작물이 크는 봄부터 여름엔 치어 죽을 거 같은 살기를 느꼈다. 겨울에는 논두렁으로 걸팡 질팡 뛰어 달아나야 했다. 미군들은 껄걸거리며 조소를 했다.

난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가는 뒤 꼭지에 대고 "나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 대한의 딸이 성의 노예로 살다 임신을 하면 낙태 수술을 했다. 미군들의 물건들을 사다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양공주들이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뒤처리를 부탁하곤 했다. 그 쓰라린 역사를 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진짜 믿을 수 없는 건 일본과 미국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8·15광복 100주년 기념사를 들으며 스스로 자립해서 힘 있는 나라가 되지 않는 한 그 서러움을 씻을 수 없다. 서로 잘났다고 당파 싸움을 멈추고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도 일본의 아베 그 일당들의 단합된 모습만큼은 배워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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