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학교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새로운 교수님들을 만나지만 서로 바빠 관계 지속이 어려운 데 이번 팀은 수행 결과가 좋지 않아서인지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쓰면서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에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만난, 전공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늘 신선하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커피 한 잔을 놓고 시끄러운 대화가 오갔다. 각자 전공을 설명하던 중 한 교수님이 앞에 놓인 파이를 보고 "우린 저 파이가 어떤 성분으로 구성되었는지 분석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소프트웨어 전공 교수님은 "아, 우리는 저 파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연구해 제공하죠." 그러자 산업디자인과, "파이를 동그랗게 하는 게 나을지, 네모로 하는 게 나을지 포장은 무슨 색으로 할지를 연구하는데" 설명이 이어진다. 잘 팔기 위해 연구한다는 마케팅 전공 교수님 뒤에 내 차례. "우린 저 파이를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배분할지를 고민합니다."라고 답했다. 모두 쉽게 자신의 전공을 설명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오~"탄성을 지르며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그날의 주제는 '융합 교육'에 대한 것이었고, 파이에 담긴 전공 설명을 계기로 두 과목이 융합과목으로 정해져 이번 학기 절찬리에 강의 중이다.

이런 인재들을 그냥 두는 건 사회복지사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어 사회복지 현장에 대한 이해와 이들의 지식과 기술을 활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이들을 이끌고 복지관을 찾았다. 노인 인구가 38%가 넘는 이 지역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으나 이날의 백미는 '도시락 배달'이었다.

어르신들에게 가장 필요성과 만족도가 높은 사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실무자는 밑반찬 배달이라고 답하면서, 산악지대인 지역 여건상 하루에 5가정도 배달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이 대답을 듣던 항공과 교수님의 한마디 "드론으로 배달하면 될 텐데요." 드론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은 차로 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환경에도 이로울 것 같다. 미국 기업 아마존은 드론으로 택배를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섬으로 혹은 산간지역으로 드론을 통한 우체국 택배가 시범 운용되고 있으니 도시락 배달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물론, 아직 드론 가격이나 지속운영 시간, 안정성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지만 복지관이 속한 지자체도 항공 산업의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서 일면 적용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그러나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나로서는 희망 속에 드는 걱정을 외면할 수 없다. 드론에 대해 던져진 사생활 침해나 안전성과 같은 문제뿐 아니라, 가장 큰 재정 문제를 들어 누가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의 일을 덜어주겠다고 드론을 보급하겠는가 하는 점, 더욱이 여전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이런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기술과 기계에 의존하게 된다면 대인 서비스 중심의 서비스 제공은 전문성이 훼손되고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제한된 시간이면 컴퓨터 작업보다 대상자와의 직접 서비스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너무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한 걸까? 기술의 발전은 우리를 수많은 딜레마에 직면하게 한다. 기술 적용이 빠른 분야가 부럽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 분야의 기술은 사회복지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수다를 떨 땐 어떤 융합이든 가능했으나 현실로 돌아오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어떻게든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사회적 기여를 하려는 동료들이 있어서다. 혹시, 드론 도시락 배달에 관심 있으신 분이나 지자체는 적극 지원을 바란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