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시호 형! 그동안 잘 지냈어요." 이곳저곳에서 반가운 인사를 한다. 형제가 아닌 만남에서 형이라는 호칭을 듣는 것은 살갑게 지낸다는 뜻이다. 이 모임은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생활한 선후배 모임인데, 분기별 만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탐방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나랏말싸미 전시회 관람이다.

대학기숙사 모임에서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하미술관에 갔다. 훈민정음과 관계되는 전시회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발명을 기리는 '나랏말싸미' 영화 상영에 맞추어, 조철현 영화감독과 자하미술관 강종권 관장이 협의하여 그림과 서화전을 개최했다. 강종권 관장이 강병인, 강용면, 금보정, 김종구, 김형관, 류준화, 문봉선 등 20여명의 국내 중견 화가들이 출품한 한글을 사용한 그림과 서화들의 해설을 해주었다.

부암동 골짜기에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武溪精舍)터가 있다. 그래서 자하미술관에는 안평대군과 관계있는 전시회를 자주 개최한다. 안평대군은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만드는데 일조를 했고, 안견, 박팽년 등 서화가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시문과 서화에도 매우 능하였다.

대학기숙사 모임은 '안평과 한글-나랏말싸미' 전시회 감상 후 훈민정음과 역사의 흐름에 대하여, 역사를 전공한 K선생, 국문학을 전공한 G교장 등의 설명과 토론, 한글창제와 역사, 그림과 서화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와인학을 가르치는 동문 K교수의 세계 유명와인과 안주의 궁합설명을 들었고, 미술관 옥상에서 별을 바라보며 회원 9명이 부부동반으로 와인을 마시고 즐거운 여름밤을 보냈다.

11년 전에 개관한 부암동 자하미술관은 sbs 드라마 '떼루아' 촬영, mbc 예술산책 '줌인' 미술관 소개, kbs 클래식 오디세이에서 소개된 명소이지만 경사진 언덕이라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인근에 이광수 별장 터, 석파정, 안평대군 이용 집터, 소설가 현진건 집터 등이 있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 시인 윤동주 문학전시관 등도 가까이 있어 나들이하기에 좋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나랏말싸미 전시회를 보면서 안평대군의 행정능력과 예술적인 감각과 탁월한 식견에 감동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훈민정음 전시회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한글을 생각해보았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로 요즘 같은 SNS시대 문자나 카톡으로 빠르고 쉽게 용건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의 키보드로 어떤 다른 문자보다 정확하고 빠르다. 그런데 한글이 산스크리트어나 몽골의 파스파 문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해야한다. 불교 미술 양식이 인도에서 시작했지만, 중국을 거쳐 신라의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완성되어 우리의 보배요, 국보가 되었다.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 주희가 집대성했지만,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을 갖도록 발전시켰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음식 등 어느 것이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여름을 보내며 미술관에서 와인을 마시고, 세종대왕과 그의 아들 안평대군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나랏말싸미 전시회 해설과 토론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늦가을에 예정 된 기숙사 모임에서 '시호 형'하고 부르는 친근한 목소리와 인문학 기행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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