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고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엔 중산층이 안보인다, 오로지 두 부류만 등장한다. 부자와 빈자다. IT업체 대표인 박 사장 가족은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아름다운 저택에서 산다. 넓은 정원은 늘 초록색 융단처럼 단정하게 가꾸어져있고 담 옆으로 나무가 빽빽해 밖에선 저택안을 볼 수 없으며 지하 벙커가 있는 도시속의 '캐슬'이다.

반면 이 저택에 기생하는 기택네 가족은 밑바닥 계층이다. 그 가족이 사는 집은 창밖으로 취객이 노상 방뇨하는 것이 보이고 장마철이면 물난리를 겪는 초라하고 지저분한 반지하방이다. 기택이 세탁한 옷을 입고 박 사장 차를 몰아도 몸에 스며든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생충'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사회를 풍자한 현대판 우화(寓話)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올 2분기 우리나라 가구당 월 평균 근로소득 316만9200원이다. 이 돈으로 자녀 교육비를 쓰고 남은 쥐꼬리만 한 통장잔고에 상당수 주부들은 한숨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돈도 적지 않다. 소득이 불과 132만5500원인 가구도 꽤 된다. 최하위 (1분위)가구다. 이를테면 기택네 가족이다. 그럼 계층사다리 맨 위쪽에 있는 최상위(5분위)의 월 소득은 얼마나 될까. 942만6000원이다. 박 사장네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 가정의 빈부격차(최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 비율)가 사상 최고치로 벌어졌다.

이는 서민들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은 15.3% 감소했다. 특히 자영업 업황이 악화되면서 2분위(21~40%)에 있던 많은 자영업자 가구가 1분위로 밀려났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 때문이다. 조선업·자동차 등 산업 구조조정 여파로 고용이 불안해진 직장인들이 명퇴금을 밑천으로 문 닫은 점포를 인수해 자영업자로 변신하는 사례도 흔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한·일 경제전쟁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아무리 피땀 흘려 일해도 적자를 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의 지갑은 더욱 두툼해지고 있다. 요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놀라운 재테크실력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재산증식 과정은 국민들에게 부러움과 박탈감을 주고 있다. 조국은 한정 상속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건설회사와 사학을 운영하던 부친에게서 '21원'의 재산중 단돈 '6원'을 상속받았지만 지금은 재산이 무려 56억 원이다. 또 기술신보에 진 빚은 한 푼도 안 갚고 가족끼리 벌인 희한한 소송으로 100억대 돈을 챙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교수가 어떻게 막대한 재산을 모았을까. 보도에 따르면 IMF사태 직후 폭락한 아파트를 경매 등으로 여러 채 매입해 비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부럽긴 하지만 나름 발품을 팔아서 재산을 일구었으니 딱히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조국 부친의 건설사가 도산하면서 금융권에 9억 원대의 빚을 진 상태였다. 또 부친이 운영하던 웅동학원도 35억 원대 대출을 받았지만 상환을 못하고 있던 처지였다. 이 시기에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조국 부부가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자금조성에 의혹을 살만하다. 최근엔 '조국 펀드' 가 정부주도의 관급 사업을 겨냥해 만들어졌다는 의혹도 눈덩이처럼 불거지고 있다. 이런 보도를 접하면 힘없고 빽없고 연줄도 없는 서민들은 의욕을 잃게 된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조국은 과거 "돈이 최고인 대한민국은 동물의 왕국"이라며 우리 사회의 배금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특권과 반칙으로 계층사다리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그에 대해 "20·30대는 상실감과 분노를, 40·50대는 상대적 박탈감을, 60·70대는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옳은 지적이다. 양극화가 극심한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든 장본인은 법무부장관이 되면 "긍정적 사회 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 정권은 영화 기생충의 우화속에 숨어있는 국민들의 분노와 냉소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어차피 청문회만 끝나면 잊혀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기 때문일까. 정권의 인식이 이러니 우리 사회는 양극화로 치닫고 나라는 이 지경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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