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뜨거웠던 여름, 잠 못 이루는 열대야도 입추가 지나니 점차 물러가고 처서를 넘어서면서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옛말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삐뚜러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날씨가 시원해져 모기들이 맥을 못 쓴다는 뜻이다.

처서가 지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24절기 어쩌면 그리 정확하지. 우리 조상님들이 아주 현명한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한다.

8월은 여름의 막바지이고 한참 뜨거울 때인데 8월 8일 입추를 지나니 그 열기가 한풀 꺾인 것이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 시기 화북지방에서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1년을 24개로 쪼개 계절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절기는 우리나라에 고려 충렬왕 시기에 도입돼 이후 농사를 짓는데 널리 사용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이 절기를 측정하기 위해 태양 그림자를 재는 기구 '규표'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가을을 귀뚜라미 벌레 소리로 감지한다. 내가 사는 집이 단독 주택이고 100여년이 넘은 집터이다 보니 여기저기 돌 틈도 많고 벌레들의 서식처가 많아서 그런지 8월 10일이 넘으면 아직 뜨거운 열대야임에도 불구하고 새벽녘에 벌레소리가 들린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이런 현상을 10여 년 전 스페인 여행에서도 느꼈다.

한낮의 40도 가까운 열기로 여행에 지친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의 조그만 호텔 1층에서 머무는데 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소서.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소서.(중략)/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겁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유명한 독일어권의 대표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이다.

이제 뜨거운 한 여름의 태양을 뒤로하고 독서와 사색의 계절이 온 것이다.

이 가을이 우리에게 외형적인 멋과 풍요에서 벗어나 내면의 풍요에 관심을 갖는 계절이 되었으면 어떨까?

잠자지 않고 책을 읽고 또 인생과 사랑을 생각하며 긴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갖는 계절, 스산한 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사색에 잠기는 계절이라면 어떨까?

2015년 UN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고 한다.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최창석 공주문화원장

또 2016년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10세 이상 국민들의 평일 독서 시간이 6분이었으며,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 10명 중 1명도 안된다고 하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국민 소득 3만 불이 넘는 OECD 국가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럽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에게 졌지만 지금은 안진다"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말로만 안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안져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는 극일(克日)의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내면적 성숙이고, 내면적 성숙을 가져오는 방법은 독서밖에 없다.

이 가을에 책도 많이 읽고 낙엽 뒹구는 공원에서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키워드

#기고 #최창석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