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성낙수 시인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꾀꼬리의 소리가 아름답지만 꾀꼬리의 똥은 지저분할 뿐이다. 새소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 새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사 이런 저런 사람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내 생각만 무조건 옳고 상대방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이념 간 갈등은 다소 해소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조선시대의 당파 싸움을 국사 시간에 안 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문제가 많은 당파 싸움을 이십 세기 현대에 와서 멈추지 않고 벌이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기 편들기에 바쁜 당파 싸움에서 많은 것을 잃고도 말도 안 되게 아직까지 이어가고 있어 전통 아닌 전통이 되어 버렸다.

현대에 와서는 거의 많은 국민들까지 당파 싸움에 휘말려 있다. 자기주장이 강하다 보니 대부분 국민이 당쟁에 빠져 있다. 과거에는 진보 쪽 사람들이 잠을 못자하며 분개하더니 이제는 보수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집권한 고귀한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이 걱정해야하는데 국민들도 나라를 걱정하느라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걱정을 가능한 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나라가 진정하게 행복한 나라인 것이다. 현대에 와서 관리에게 무한 희생. 봉사만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에게 관대하고 자기에게 인색한 것이 관리의 기본 덕목 인 것이다.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친구간의 갈등을 고조 시키고 있는 것도 알량한 정치인들이고 세대 간 이념의 갈등을 야기 시켜 사회 문제를 불러오고 있는 것도 정치인들의 책임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 보통 필부들의 덕목인 것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나를 희생할 때 분쟁은 있을 수 없다.

오직 진영논리에 따라 소신 없이 발언하고 있는 작자들의 입을 보고 있는 국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아니 순수하게 분개할 국민도 많지 않다. 패거리에 끼어들어 있는 자들이 많다보니까. 거의 모두가 당파 싸움에 끼게 된 셈이다. 반대 집회와 지지 집회도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 편이냐 아니냐가 문제인 것이다. 갈수록 내 편들기에만 급급하다 보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적이 내부에 있게 된다. 결국 종국에 가서는 미국 편과 북한 편으로 편 가르기를 하다 끝내 망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양성은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옳고 그름에서는 그렇지 않다. 무조건 내 편을 응원하는 것은 다양성이 결코 아닌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내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분명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 편들기에 바쁘다 가는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야 바른 사회가 전개 될 수 있다. 남의 잘못에 인색하고 자기의 잘못에 관대한 자는 도둑이나 사기꾼보다 훨씬 질이 나쁜 사람으로 소인배이라 할 수 있다.

현 정부도 벌써 개혁을 주체 세력을 지나 개혁을 받아야 할 처지에 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당이나 기득권이 되고나면 정도를 잊고 있어 아쉽다. 모두 공정하고 청렴해 질 때 세상이 밝아지고 행복 해진다. 서로 내 편들기만 급급하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해 나간다면 더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모두가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촛불 집회의 진정한 본의미인 자기희생은 현실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성낙수 시인
성낙수 시인

청렴과 공정과 평등을 벗어나면 현 정부는 전 정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 기본을 분명하게 지켜 나가야 한다. 국민들은 서로 대립을 풀어야 한다. 이 대립을 풀지 않을 때 망국으로 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 국민의 반 이상은 침묵하고 있어 희망이 있다. 이 침묵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있어 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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