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빼곡하게 자라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60년대 아이들이 예순 고개를 넘었다. 해마다 12월이 시작되는 첫 번째 토요일 저녁은 어린 시절 그 교실로 돌아가 친구들을 만나는 날로 못을 박았다. 바쁘게 살아 온 세월 속에서도 잊혀지고 싶지 않은 너와 나 이름 앞에 붙은 완장같은 명찰을 떼고 순수함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있기에 참 좋다. 사십 여 년 전 어린아이로 돌아가 허물없이 만나는 그 날 그 시간은 분명 충전을 위한 휴식시간이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못 본 그 꽃' 시인은 '그 꽃'을 통해,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우리들에게 말한다. 천천히 한 숨 돌리고 쉬엄쉬엄 산과 들을, 꽃과 나무를 보고, 하늘과 구름도 보고, 함께 가는 사람도 돌아보는 여유로운 마음과 눈을 갖고 살아가라고 말이다. 분주한 일상에서 쉼 없이 옆도 뒤도 볼 겨를 없이 일 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따스한 태양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싱그러운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꽃향기 풀 냄새를 음미할 줄 아는 여유와 쉼이 아쉬운 것이다.

원숙한 리더십을 발휘해 1930년대 불황을 극복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휴식은 일과 후 백악관 2층 서재에서 여는 칵테일파티였다고 한다. 대부분 가까운 친지 친구들이 초대되는 이 파티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었는데 정치나 전쟁 경제 위기 등 심각한 주제는 금기사항이었다. 대신 영화나 스포츠 또는 회고담 같은 가볍고 재미있는 화제만을 주고받는 시종 웃음이 그치지 않는 철저한 휴식시간으로 보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쉴 줄 아는 여유.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있는 능력. 바쁜 일과 속에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삶의 진리는 가장 단순한 데 있다. 그 여유로움으로 활력을 재충전하여 다음 날 힘차게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우리나라 40~50대 중년 남자들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높은 질병들은 육체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라 한다. 지금까지 걸어 온 인생길이 급하게 빨리빨리 달려왔다면, 걸어 갈 인생길은 천천히 조금 느긋하게 만만디로 가보자. 분주한 삶속에서도 잠시 조용한 휴식을 가질 줄 아는 여유. 그 속에서 평안을 찾는 그것은 바로 사막 가운데 샘이 솟고 풀과 나무가 자라 목마름을 해갈하는 오아시스처럼 덤으로 따라오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조금 늦게 간다 할지라도 너와 나 우리 모두 같은 결승점에서 만나지기에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살아가는 달콤한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충전을 위한 휴식과 여유가 절대 필요하다. 올라갈 때도 내려 올 때도 그 꽃을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멋진 황혼을 준비하는 진정한 쉼, 평안한 휴식이다. 꽃이기 보다는 열매이고, 요정이기 보다는 여신인 살집 잡히고 넉넉한 아줌마에게서 안정감을 찾듯 화려하진 않지만 넉넉하고 푸근한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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