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나는 누구인가! 바쁜 일상 속에서 복잡해진 머릿속 비우고 가끔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바람 끝이 차가워졌다. 폭염속의 여름이 지나고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와 나뭇잎을 물들일 채비를 하고 과일과 알곡을 여물게 한다. 파란 하늘빛 아래에서 나무는 아직은 초록빛이지만 바지런히 가을을 맞으며 저물어가는 9월을 배웅하고 있다.

백담사는 처음이다. 만해가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라고 노래한 '님의 침묵'도 만나보고, 내설악의 속살도 볼 생각에 가슴 설렌다. 백담사(百潭寺)는 마을버스로 갈아타 약 20분 가량 경사진 계곡을 끼고 좁은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흰색물감을 칠한 듯 하얀 바윗돌과 그림처럼 펼쳐지는 계곡의 풍경을 보려면 버스 왼쪽에 앉아야 한다. 오른쪽은 절벽이다. 난 다행히 왼쪽에 앉아서 계곡의 흰 바윗돌과 졸졸 흐르는 맑은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백담사라는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수심교를 지나면 그 건너로 고즈넉한 산사의 자태가 펼쳐진다. 깊고 좁은 길을 따라 가파지른 계곡을 굽이굽이 지나온 뒤라 눈앞에 단아하게 펼쳐진 절이 피안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다. 아담하고 정갈하다. 내설악 산새의 위엄에 하얀 바위가 부서져 내리는 말간 계곡물을 보다가 확 트이게 펼쳐진 곳. 아니면 말 그대로 마음을 닦은 자, 마음을 닦는 자들이 건너는 다리 수심교를 지나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그랬던 이곳이 관광객들로 붐빈다.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여러 저작을 남긴 절로 유명한데 전두환 전 대통령부부가 은거했던 절이라하여 더 알려져서 씁쓸하다. 두 평 남짓한 초라한 방을 보며 한 나라의 지도자였지만 소유의 덧없음을 느낀다. 훗날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만해의 얼이 깃든 곳을 극명하게 다른 삶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 은거하면서, 한 공간에 공존하는 역사의 아이러니 현장이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달리해서 펼쳐지고 있다.

만해 한용운 흉상 앞에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것은 다 님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기룬것은 다 님인 것이다. 그는 님의 침묵을 집필하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사랑하는 나의 님이 푸른산빛을 깨치고 갔다. 그렇지만 고통과 슬픔을 극복한 새로운 희망이 있다.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다.

님을 해석하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시는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난 그리운 님으로 여기고 희망을 가슴에 담고 간다. 보낼 사람을 보내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나는 어디로 가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1879-1944)선사의 출가 사찰이자, 만해 정신의 산실이다. 선사의 유물과 자료를 한자리에 모은 만해기념관은 백담사의 크나큰 자랑이다.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자 승려, 독립 운동가였던 한용운은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활동을 했다. 서슬 퍼런 기개가 백담사에 머물러 있는 듯 근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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