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한낮 햇볕은 강렬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선선하다. 사색의 계절 가을이다. 그래서 서점을 찾았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니 낮 익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김진명의 소설 '직지'다. '직지'는 출간 한 달여 만에 18만부가 팔리며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직지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소재로한 소설이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직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다. 작가의 말대로 "개연성이 있는 '합리적 허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작가는 "책을 쓰면서 직지의 위대함에 대해 놀라운 것들이 너무 많았고, 직지가 너무 세상에 묻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소설 '직지'를 통해 금속활자의 도시, 청주와 독일 프랑크프르크를 다시 보게 됐다. 청주 흥덕사지에서 직지가 탄생한 것은 고려 공민왕때인 1377년이다. 독일 프랑크프르크 인근 마인츠에서 구덴베르크가 '42행 성서'를 발간한 것은 1450년이다. 시기적으로 78년의 간극이 있다. 혹시 직지와 '42행 성서'사이엔 연관성이 없을까. 당시 고려와 유럽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지식도 적었고 설사 있었다 해도 심리적으로는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필사본에 '고려왕이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선교사들)을 환대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발견했다는 언론기사도 있다. 적어도 교류는 있었다. 또 시사주간지 '타임'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42행 성서'와 직지의 제조법이 유사하다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소제다.

작가의 말대로 직지는 너무 오랫동안 묻혀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은 구덴베르크의 '42행 성서'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 故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직지'를 찾아내면서 역전됐다. 이후 대한민국은 금속활자의 종주국이 됐으며 직지를 발간했던 흥덕사지가 있던 청주는 인쇄문화의 발상지가 됐다.

금속활자의 발명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지식을 담은 책을 대량생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졌고,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는 '개인적 지식'이 '공적 지식'의 영역이 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됨을 의미한다. 유럽은 우리보다 금속활자를 늦게 개발했지만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구덴베르크를 낳은 프랑크프르트는 지금도 유럽 출판의 중심지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부터 재개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매년 가을, 닷새간 펼쳐지는 북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출판업자, 에이전트, 서점·도서관 관계자, 작가, 번역가,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 인쇄업자, 영화 제작자, 소프트웨어와 멀티미디어 공급자 등이 모여든다. 도서전은 전 세계 출판사들의 신간 도서가 소개되고 국제적인 저작권의 판매, 협상, 교류가 이뤄진다. 또한 최근 출판 미디어의 동향을 파악하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국제 미디어 시장으로서 기능한다. 한마디로 세계 출판 시장의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고 앞으로의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출판계 최대의 축제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고문

하지만 금속활자의 산실인 청주는 어떤가. 혁신적인 인쇄문화의 발상지다운 도시인가. 세계인들은 직지의 도시 청주를 얼마나 아는가. 2015년부터 직지의 세계화를 위해 직지코리아 페스티벌을 열고 있지만 시민들도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다. 금속활자를 낳은 청주시의 역대 시장들은 위대한 직지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마인드와 비전이 있었는가. 직지는 박제화(剝製化) 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김진명은 소설 직지에서 구덴베르크 42행 성서의 뿌리는 흥덕사지 금속활자라는 부각시키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청주시는 직지를 통해 무엇을 찾고 어떻게 꽃피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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