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1978년 섯밭마을의 도리깨 타작
1978년 섯밭마을의 도리깨 타작

햇살이 따갑다. 알곡을 여물리기 위해 마지막 기를 끌어올리느라 발갛게 상기된 햇발이 들녘에 가득하다. 남편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난 뒤에는 아예 밭에 나가 산다. 밭 한 뙈기를 몇몇이 나눠하는데 우리 몫은 200~ 300평 정도 된다. 오만가지가 다 심겨 있다. 옹골찬 취미활동이다.

다른 이들의 밭에 비해 윤기가 자르르하다. 첫 새벽에 나갔다가 해가 중천에 치솟을 무렵에 들어와 한잠 늘어지게 잔다. 해가 설핏해지기 무섭게 또 밭으로 달려 나갔다가 오밤중에 들어온다. 정성이 뻗쳤다. 그 정성에 감복을 했는지 설익은 농사꾼의 수확물이 제법 실하다.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감한다.

나는 농사꾼의 딸로 태어났어도 농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농사에 참여하는 것은 수확 때 잠깐 뿐이다. 들깨나 참깨 털기와 콩을 거둬들였다 터는 일이다. 깨는 베어서 마주 세워 두었다가 마르면 밭 한 귀퉁이에 비닐포장을 깔고 부지깽이만한 나뭇가지로 턴다. 쪼그리고 앉거나 엉거주춤 서서 깻단을 거꾸로 들고 톡,톡,톡 두들기면 오소소 소리를 내며 깨알들이 발치에 쏟아져 쌓인다. 아무리 농사에 무관심했어도 이 때만큼은 재미가 쏠쏠하다. 힘들 만할 즈음엔 일이 끝난다. 기껏해야 한두 말 분량이다. 농사꾼이 보면 소꿉놀이 정도이겠지만 깨알같이 쏟아진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얼핏 수확의 기쁨을 알 것도 같다. 봄, 여름내 가뭄, 폭염과 싸워 이긴 남편의 자랑스러운 전리품이다.

몇 아름 안 되는 콩은 쪼그려 앉아서 털었다. 콩 수확은 원래 다 여물면 뿌리째 뽑아 마당에서 바사삭 소리가 날 만큼 말렸다가 많으면 도리깨로 털든가 그리 많지 않으면 쪼그리고 앉아 방망이로 두들겨 턴다. 도리깨로든, 방망이로든 두들겨 털 때마다 콩들은 사춘기 애들처럼 탁탁 튀며 대들기도 하고 제멋대로 튀어나간다. 제가 살 곳인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하수구인지도 구별 못하고 천방지축 그저 뛰쳐나가려고만 안간힘을 쓴다. 오죽하면 콩 튀듯 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사춘기 아이 어르듯 살살 달래가며 힘을 조절해서 털어야 한다. 그런 다음 콩대와 깍지를 다 걷어낸 후 낟알들을 얻는 것이다. 일하기가 까다롭다. 콩대는 물론, 콩깍지까지 날을 세워 찌르고 고약을 떠는 바람에 장갑 없이는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 얼마 되지도 않는 것 수확하기도 이리 어려운데 그 옛날 엄마 아버지는 어찌 그 많은 일들을 해 내셨을까 싶다. 손이 갈퀴가 되어 살아온 이유를 알 것 같다.

엄마 아버지는 마당에 멍석을 넓게 깔고 들깨며, 콩을 도리깨로 타작을 하셨다. '휘익 착' '휘익 착' 도리깨 휘추리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마주 서서 일하는 두 분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팔만 살짝 움직이는 것 같은데 도리깨는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내려와 착착 알곡을 토해내게 한다.

1985년 명심이 마을의 도리깨 타작
1985년 명심이 마을의 도리깨 타작

도리깨는 엉성해 보이면서 콩, 보리, 깨 등 곡식 알갱이를 야무지게 떨어낸다.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다.

도리깨 휘추리를 너무 세게 치면 멍석 밖으로 멀리 튀어나가고, 약하면 호락호락 제 속을 내어 놓지를 않는다. 깍지 속에서 좀 더 버티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은 모양이다. 도리깨와 깍지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그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적당히 어르고 뺨치며 타협에 들어간다. 엄마도 등짝에 땀이 촉촉이 흘러내릴 때까지 힘을 조절하며 호흡을 맞춘다. 둘이 마주서서 도리깨질을 할 때는 숨 쉬는 템포도 같아야 한다. 그러나 엇갈려 내리쳐야 서로 부딪거나 엉키지를 않는다.

엄마 아버지는 도리깨질 하듯 그렇게 마주서서 척척 호흡을 맞춰 사셨다. 회혼이 넘도록 사시는 중에 어찌 힘든 일이 없었으랴. 때로 꼬이고 부딪는 일이 왜 없었으랴. 그래도 내리치는 속도와 힘을 잘 안배하고 조절하며 알토란 같이 5남매를 키워내셨다. 난 이순이 넘도록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별로 해 준 것이 없다. 내 위주로 산 것 같아 때때로 미안하다.

둘이 또는 여럿이 하는 도리깨질은 내 위주가 되어선 안 된다. 상대방이 내리치는 방향과 속도를 보고 나를 맞추어야 다치지 않고 온전히 일을 해낼 수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맞춰 가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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