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담당 김시근씨 "화성연쇄살인 '동일범'이란 말 듣고 감격"

중부매일 1994년 1월 18일자 15면 캡쳐.
청주서부경찰서(현 흥덕경찰서) 강력5반 김시근 형사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이춘재씨를 조사하고 있는 것을 보도한 중부매일 신문기사 스크랩(1994년 1월16일자 15면).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처제의 오렌지주스 먹는 습관을 노린 아주 잔혹한 계획범죄였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충북 청주 처제 강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를 검거한 청주서부경찰서(현 청주흥덕경찰서) 강력5반 김시근(62·당시 경장)씨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수사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살해당한 처제 A(당시 20세)씨한테 습관이 하나 있었어요. 조카를 보기 위해 이춘재 집에 가면 델몬트 유리병에 있는 오렌지주스를 한잔 마시고 손을 씻고 아이를 보는 습관이요. 이놈이 그걸 노리고 거기다 수면제를 탄 거죠. 제가 봤을 때는 최소 40알은 넣은 것 같았어요. 초기 수사에서 한약재 성분 수면제도 그 집에서 나왔죠."

계획범죄 정황은 또 있었다. 

"이춘재 집에 짐이 거의 없었어요. 범행을 저지르고 원래 집인 경기도 화성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던 거죠. 아내가 가정불화로 도망가고 직장도 잃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리자 처제를 성폭행하고 이곳을 뜨려고 한 거죠.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사건초기 덜미를 잡히면서 범행 일체가 드러나게 됐어요."

김씨는 이춘재를 범인으로 확신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사건 초기, A씨의 시신에서 방어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김씨는 면식범의 소행일거라고 판단했다. 이에 김씨와 수사팀은 그 길로 가족들이 모여 있는 A씨의 부모님 집을 찾았다. 

"어머니, 아버지 할 것 없이 가족 모두 통곡을 하며 슬퍼하는데 한 사람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어요. 눈을 내려 깔고 사람을 보는 시선도 특이했죠. 그가 이춘재였습니다. 죽은 처제의 큰 형부인데 감정동요가 전혀 없었어요. 직감적으로 이상하다 확인해보자 생각하고 포니차(순찰차) 뒷좌석에 타라고 했죠. 그러곤 제가 앞자리에 타서 뒤를 슬쩍 보는데 이놈(이춘재)이 다리를 부르르 떠는 거예요. 이놈이다. 100% 확신했죠."

김씨는 그길로 강서파출소(현 강서지구대)로 차를 몰았다. 

"파출소에 앉혀놓고 '니가 장인이랑 와서 가출인 신고하지 않았냐' 물으니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A4 종이 7장 분량 질문을 쭉 하면서 진술을 받았죠. 그런 다음에 동료형사가 똑같은 질문을 쭉 했더니 진술이 엇갈린 겁니다."

이춘재가 범인임을 확신한 김씨는 이틀에 걸친 조사를 통해 자백을 받아낸다. 그 사이 사건현장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들을 확인하게 된다. 

"이춘재 집 욕실 세탁기 받침대 밑이랑 화장실 문에 있는 헝겊손잡이 장식에서 피해자 DNA를 찾았어요. 범행흔적을 지우기 위해 시체를 대형 베게커버에 싸서 버리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완벽하지 못했던 거죠."

김씨 등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로 화성에서 청주까지 이어진 이춘재씨의 범죄는 막을 내리게 된다. 

현재 경기도 일산시에 있는 건설회사 부장으로 근무하는 김씨는 당시 자신이 검거했던 범인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이라는 보도에 감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춘재가 재판에서 사형선고(1심)를 받았을 때 법원에 있었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이 동요됐어요. 처제를 죽인 잔혹한 살인범이 죗값을 치르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이라는 보도를 보고 그때 수사를 잘 한 게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춘재는 지난 1994년 1월 18일 구속된 이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 사건은 충북경찰이 수사한 사건 중 DNA가 증거로 채택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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