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 / 쉼보르스카

무더운 여름날, 개집 그리고 사슬에 묶인 개 한마리,
불과 몇 발자국 건너,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가 놓여 있다.
하지만 사슬이 너무 짧아 도저히 닿질 못한다.
이 그림에 한 가지 항목을 덧붙여보자.
훨씬 더 길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우리의 사슬,
덕분에 우리는 자유롭게 서로를 지나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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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최호일 시인.

쉼보르스카는 오늘 아침 놀라운 사슬을 발견한다. 그동안 사슬의 기능을 묶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새로운 사슬은 너무 길어 '자유롭게 서로를 지나칠'수 있게 하는 기능이다. 두 종류의 사슬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그는 모든 사슬을 일시에 끊어버린다. 우리가 오늘 아침 무심히 마주친 모든 사람들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그 사슬이 나타나 우리를 꽁꽁 묶어 놓는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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