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오랜만에 박달재 옛길에 올랐다.

박달재에는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 도령과 충청도의 어여쁜 낭자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애절한 전설로 내려온다. 하지만 터널이 뚫리기 전의 박달재는 나에게 있어 구불구불한 길만큼 속을 뒤집어 울렁이게 했던 끔찍한 버스 멀미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다. 비포장 고갯길에 온 몸을 뒤흔들던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멀미를 참아야 했던 순간이 이제는 기억으로 머무는 곳.

세월은 흘렀고 뻥 뚫린 도로 대신 옛길이 정겨운 것은 지나온 세월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머무는 신작로 가에는 이름 모를 들풀이 무성하였고, 하늘은 먹구름을 잔뜩 입에 물고 심술궂게 내려다보며 언제라도 한차례 내뿜을 기세다.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차창 밖으로 내민 다른 손에서는 움켜쥔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고갯길을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모든 것과 인사를 나눌 때 후두득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은 앞으로 다가와 창문을 몇 번 두드리다 싱겁게 이내 멈췄다.

박달재 정상 휴게소 입구에 다다르자 전설 속의 두 남녀를 달래기라도 하듯 '울고 넘는 박달재'가 마치 진혼곡처럼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주차장에는 관광 명소답게 때마침 도착한 관광버스가 문을 열고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중독성 있게 귀에서 맴도는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천년된 느티나무 안에 아미타 부처님을 조성한 목굴암 앞에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소원이 무엇이건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태며 성각스님이 오랜 각고 끝에 조성하였다는 오백나한전과 2층에 마련된 시목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목굴암 건너편 '시목당'에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시목당'이란 나무를 섬기는 작업실이라는 당호다. 평소에 열려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호기심과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니 성각스님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려왔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관광객들은 일행과 함께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스님. 좀 돌아봐도 될까요?"

"일행이 아니었소?"

많은 관광객이 드나들기에 말없이 조각에만 열중하던 중 참지 못하고 스님이 한마디 하게 된 경위를 슬쩍 내비쳤다. 양해도 없이 남의 작업장에 들어와서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스님의 의자에 앉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조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조각가 앞에서 이거 붙인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으니…, 나는 사명감을 가지고 평생을 해온 일인데 질문을 해도 소통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지"

"말씀해 주시길 잘하셨어요. 잘못된 것을 알아야 다른 곳에 가서도 실수를 하지 않죠"

관광객들 사이로 들려오던 스님의 말들이 이제 이해가 갔다. 정작 스님 앞에서 예의 없는 질문과 행동을 하던 사람은 민망함 때문인지 다 듣지 않고 일찍 나갔고 남아있던 일행들이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아님 말고 식의 질문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대답 또한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 결과를 얻는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그러고 보니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이 우리의 몫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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