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허조, 권균, 심희수, 이덕수, 윤지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일단 조선시대 관직에 계셨던 분들이다. 다른 공통점을 찾아보면 모두 장애를 갖고 계셨다. 척추장애인, 간질장애인,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이런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관직에 올라 맡은 바 소임을 다 하셨다.

혹시 양반 가문 출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적어도 조선 시대에는 장애에 대해 사회적 차별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부모가 나이 70세 이상이 된 사람과 독질(篤疾, 장애 또는 중병)이 있는 사람은 비록 나이 70세가 차지 않더라도 시정(侍丁, 봉양을 위하여 국역(國役)에서 면제된 장정(壯丁)) 한 사람을 주고"라는 말이 나온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해 나라에서 봉양하는 사람을 배정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봉양 정책만 시행한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점복사, 독경사, 악공 등 전문직 일자리를 창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이 조선시대 정책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같이 살던 전통이 언제부터 바뀌었을까? 고려대 정창권 교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긴 '불구자'라는 단어는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되었고, 88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장애인을 별도의 시설에 격리하면서 장애인 제도가 정착되었다고 말했다. 그 기저에는 사람을 정상인과 장애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있고, 장애인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린 듯 하다.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안는 농업 실천이 사회적 농업이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영농에 종사하게 하는 농업, 정신적·신체적 장애인에게 농업의 치료적 기능이 결합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업, 직업이 필요하지만 기술·지식이 부족한 이에게 혹은 농업·농촌을 접한 적이 없는 도시의 아동·청소년 등에게 농사를 가르쳐 직업을 얻거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 돕는 농업이 사회적 농업이다.

현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81번째 국정과제인 '누구나 살고 싶은 복지 농산어촌 조성'에도 사회적 농업 개념이 포함되었고 2018년도부터 사회적 농장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2020년까지 기반을 조성하고, 추후 '함께 사는 따뜻한 농촌 실현'을 하려는 전략도 올해 발표했다.

정책이 정책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또한 아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사회적 농업을 제대로 이해·수용해야 하고 대상자들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사회적 약자도 행복해질 수 있다.

리비히의 최소량 법칙이 있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어떤 원소가 최소량 이하인 경우 다른 원소가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생육할 수 없고, 원소 또는 양분 가운데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것이 식물 생육을 지배한다는 것으로 1843년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가 주장한 법칙이다.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사회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도 행복해야 한다. 그들이 행복할 때, 삶에서 만족을 느낄 때, 자신들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느낄 때 우리 사회가 행복한 것이다. 그 일에 농업이 나선다. 그것이 사회적 농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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