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태풍으로 많은 피해가 있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태풍이 온 다음 날 아침, 외출을 하려다 축 늘어진 감나무를 보았다. 나뭇가지를 받쳤던 쇠기둥이 툭 부러져 있었다. 조금만 더 늘어지면 바닥에 닿을 듯 했다. 쇠기둥이지만 태풍 앞에서 허리가 꺾이고 말았다. 워낙 낡기도 하고 녹이 슬었기 때문에 더 힘을 잃었나 보다. 덩달아 다른 가지를 받쳤던 나무 기둥들도 부러졌다.

일단 약속 때문에 집을 나섰지만 내내 신경이 쓰였다. 우리 집 감나무는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어 뿌리를 뻗을 공간도 별로 없다. 사람과 비교한다면 아마도 두 다리를 쭉 펴고 있지 않고 항상 웅크리고 있는 모습일 게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이사와 처음 심은 나무가 감나무다. 아파트에 살다가 왔기 때문에 마당에 여러 나무를 심고 싶었다. 처음엔 길게 꽃밭을 만들어 호박도 심고 꽃도 심고 한쪽에 감나무를 심었다. 오일장에 가서 6천원인가 7천원을 주고 샀다. 어떤 감이 달릴까 물도 주고 거름도 사다 주었다. 한약 찌꺼기가 좋다고 해서 땅 속에 묻어 주기도 했다. 얼마 후 쑥쑥 자란 감나무에서 감이 달렸다.

처음 키운 감나무에서 감을 따니 신기했다. 게다가 감이 얼마나 큰지 정말 주먹만 했다. 그러다 몇 년 후 1층집을 2층으로 올렸다. 그러면서 2층 공간으로 쭉쭉 뻗었던 감나무 가지를 모두 베어야만 했다. 감나무는 점점 가지를 위집으로 뻗어가기 시작했고 골목 옆쪽으로도 뻗었다.

처음부터 감을 따면 윗집과 옆집이랑 나눠 먹었다. 그런데 가지가 윗집으로 넘어가고 골목으로 나오자 감 배분을 다시 바꿨다. 윗집과 골목집에 더 많이 드리고 늘어진 감나무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다녔을 분들에게 나눠드렸다. 결국 주인인 우리는 감을 제일 조금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윗집으로 간 가지 일부는 감을 따지 않았다. 그 가지 쪽은 윗집 분들이 직접 따서 드시라고 했다. 그러던 중 윗집에 새로운 분들이 이사를 왔다. 가을이 되자 이사 온 분께 감을 드리면서 "저 가지는 모두 따 드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셨다. 그래서 우리 감을 골목길 세 집이 나눠 먹게 되었다. 감 알이 점점 굵어 가면서 나뭇가지가 점점 늘어졌다. 나름 나뭇가지를 받쳐 놓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개를 조금 숙여야만 다닐 수 있었다. 불편하겠지만 단 한 번도 감나무 가지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해는 감이 더 많이 달렸다거나 더 크다는 등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렇게 관심을 받던 감나무가 잘못하면 부러지거나 쓰러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내 걱정을 달고 외출했다 돌아와 깜짝 놀랐다. 윗집과 옆집 아저씨 두 분이 긴 쇠파이프로 감나무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접까지 해서 예전보다 더 높이 받쳐주었다. 그것도 쇠파이프를 위집 안으로도 더 놓고 골목으로도 더 개수를 늘려 받쳐 주었다. 윗집은 마당에 쇠파이프를 세워 놓은 셈이니 미관상 안 좋고 불편할 텐데…, 이웃을 만나도 정말 잘 만났다. 요즘 감나무는 예전보다 더 편안하게 감을 매달고 당당하게 서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올해는 더 많은 감을 매달 것이다. 자신의 버팀목을 만들어 준 참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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