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새벽 일찍 일어나 제물을 준비 했다. 간밤에 재워놓은 산적거리를 적당히 익혀 놓고, 달걀을 황백으로 지단을 부쳐 석이버섯과 당근을 곱게 채를 쳐 놓았다. 익혀놓은 고기위에 색을 맞추어 고명을 올린다. 제사 음식은 짝수로 하지 않고 홀수로 한다기에 다섯 쪽을 준비 했다. 완성된 산적은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예쁜 보자기 에 정성껏 싸 놓고 남편을 깨웠다.

큰댁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손녀 딸 둘을 앞장세우고 아들과 큰댁을 들어서니 사방에서 모여든 친척들이 반겼다. 우리는 얼싸 안고 등을 토닥이며 정담을 나누웠다.

이렇게 정월과 추석 명절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만남의 장은 설레임과 기쁨으로 넘쳤다.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차려 놓고 차례를 지냈다. 집집마다 손자 손녀를 옆에 두고 장손은 서열을 따져 잔을 올리게 했다. 차례는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주방에서 객물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막내네 귀염둥이 손자가 괴성에 가까운 울음보를 터트렸다. 아이엄마는 놀라서 아기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유인즉 "배가 고파서"라고 한다. 금방 터질 것만 같은 웃음을 애써 참았다.

차례가 끝나고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조금 전의 주인공이었던 손자는 인기 만점으로 푸짐하게 한상을 제대로 차려 주었다. 명절날 천진난만한 어린 손자의 재롱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장손은 앞으로 기제사는 무조건 휴일 날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장손의 의견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도 많다는데 제삿날을 기억하고 날 받아 지내자는 것은 바쁜 시대에 흐름인 것을.

세상은 핵가족화 되면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집집마다 싱글을 고집하는 처녀 총각들이 늘어나고 있지 아니한가.

1975년, 단촐하게 네 식구가 전부인 가정에서 자라 칠남매나 되는 대가족 임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우물이 없어서 공동 우물을 길어다 먹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손빨래를 했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시댁 선산의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며 친정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성 감곡 천주교성지로 유명한 곳이 친정이다. 어머니 산소에 성묘를 가자는 내말에 흔쾌히 따라 주는 동생이 있는 난 행복한 사람. 남동생과 만나 함께 가는 길엔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이 반겨 준다.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는 들판이 더없이 평화로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천리 방죽을 지나 부모님이 계신 곳을 한달음에 온 것 같다.

칡넝쿨이 우거진 산길에는 도토리와 밤이 떨어져 있고 '푸드득'거리며 꿩이 발자국 소리에 놀라 날아올랐다. 신선한 충격이다.

좌청룡 우백호를 따져 모신 산소는 사방이 고요했다. 또르르 거리며 울어대는 풀 벌래들의 합창소리가 화음을 이룬다.

삼남매는 싸가지고 온 제물을 차리고 나란히 서서 절을 올렸다. 묘소를 둘러보며 잡풀을 제거하는 막내 동생 머리가 하얗다. 인생이란 참으로 무상함을 느낀다.

우리의 변치 않는 우애를 확인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쪽빛하늘의 솜털구름이 더없이 아름답다. 어머니 얼굴이 보일 것만 같았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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