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자가 관급공사 입찰과정에서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골프접대와 호텔마사지 향응은 일상적이었으며 심지어 건설업자에게 중앙부처 간부의 용돈까지 챙겨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법이 시행 된지 4년이 지났지만 '청탁금지법'은 있으나 마나한 법이 돼버렸다. 국토교통부 전·현직 직원 20여명이 건설업자 뇌물·향응 비리 사건에 연루돼 무더기로 법적 처벌되거나 국토부 자체 징계를 받았다. 공직자 부패라는 고질적인 악습이 다시 독버섯처럼 고개를 들고 있다.

어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내부 감사 보고서 내용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대전청 모 국장은 특정 건설업자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대가로 5천만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서울청 모 직원은 안양∼성남연결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하도급업체 등으로부터 총 1천100만원의 뇌물을 받고 하도급업체 선정 입찰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또 처벌된 공직자들은 호텔 마사지·사우나 등 향응(20회·238만원)을 받았고 골프(2회·44만9천원)접대도 받았다. 한 건설업자의 휴대전화에선 "올 때 국장 용돈 좀 준비해 오라"는 메시지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국토부는 청탁방지법 예외부처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처럼 이들 공직자들은 막강한 권한으로 뇌물을 받고 접대를 즐겼다. 부패공화국의 추악한 단면이다.

청탁금지법이 제정된 곳은 후진국형 공직비리가 도를 넘을 만큼 부패했기 때문이다. 공직자 뿐만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처럼 금품을 받아왔다. 권부(權府)의 핵심인 청와대 고위공직자와 여야정치인은 물론 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도 예외가 없었다. 바로 이 때문에 2012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기 위한 법령을 제안한 것이 소위 청탁금지법이다.

이후 청탁금지법은 우리사회의 부패사슬과 청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식사 3만원, 경조사비 5만원 선물 10만원'은 대다수 공무원들과 서민들의 뇌리에 박혔다. 공무원들 중에는 민원인의 따뜻한 커피한잔을 마다하거나 지인이 밥 한번 먹자고 해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또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손주 담임교사에게 건네준 박카스 한 병조차 거절당하는 것이 요즘의 교실풍경이다.

하지만 힘 있는 기관에겐 만만한 법이 돼버렸다. 수십 곳의 중앙부처와 공기업, 자치단체 공직자들이 유관기관으로 부터 부당하게 경비를 지원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이 지난해 국민권익위 조사를 통해 밝혀진바 있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38명과 보좌진 17명, 지방의원 31명 그리고 상급기관 공직자 11명도 포함됐다. 또 현직 판사시절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을 만나 636만원어치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변호사가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청탁금지법은 시행초기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접대문화를 바꾸었다는 말이 나왔으나 공직자들이 앞장서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이번에 전·현직 국토부 공직자들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공직자 부패의 질긴 악습과 망령이 되살아난다면 청탁금지법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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