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학의 9월은 활기차다. 새 학기의 시작이 언제나 설렘을 주는 덕이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이번 9월은 내게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다.

이번 학기는 4학년 강의를 맡게 되었다. 대체로 4학년 2학기는 취업준비에 집중하는 시기여서 학생들이 졸업에 필요한 과목 이외엔 수강을 잘 하지 않는다. 다행히 내 수업은 꽤 많은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왔다. 강의 계획에 따른 수업을 하려면 인원이 좀 많은 편이어서 오리엔테이션 때 다른 과목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변경해도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토론 수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매주 과제가 있어 버거울 수도 있다는 말도 보탰다.

이 정도에 크게 동요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는데 아뿔싸, 예상이 빗나갔다. 학생들이 너무 빠져나가(과목 변경신청) 내 과목이 폐강 직전이라는 조교의 급한 전화에 정신이 번쩍 났다. 너스레로 포장된 자만을 학생들이 알아챈 모양이다. 한 과목 폐강된다고 크게 변화될 것은 없지만, 강의를 듣겠다 찾아온 학생을 쫓아낸 것 같아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건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신청을 했다가 변경한 학생들에게 전화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교수가 직접 전화한 것에 대해 학생들은 적잖이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그 노력 덕에 다시 수강인원이 확보되어 강의는 무사히 개강 되었다.

이 일을 겪으며 생각이 많았다. 4학년의 전공 토론 수업은 취업 면접 등을 대비한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은 정말 오만이었을까. 학생들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당장 안게 될 과제에 대한 부담이 먼저였겠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학생들의 선택을 많이 받기 위한 '인기 있는' 선생이 되는 방법은 쉽다. 폐강 위기를 겪으면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하고자 했던 마음이 살짝 접히는 기분도 들었다.

모두를 만족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내 과목에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는 소수의 학생은 남아있었다. 그 소수만을 대상으로 강의를 열 수 없었던 건 학교 규정 때문이었지만 오히려 이 기준선 덕분에 나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좋은 강의를 선택하여 듣거나 반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강의를 폐강시킬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권리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좋은 강의를 열어야 하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다. 그러나 좋은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편견 때문에 선택을 받지 못해 강의가 열리지 못하게 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런 강의 존폐 위기에서 무심코 떠오른 생각 한 토막. 부정하고 싶지만, 사회복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는 "도움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른다"는 말이다. 이 말은 도움을 받는 사람에 대한 불편한 편견을 담고 있다. 우리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그들은 받는 사람이므로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실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받는 도움은 그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은 우리가 사회의 의무를 위탁하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권한이다.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주는 것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회복지사와 대상자의 관계는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지위 때문에 주어진 것이란 사실은 이렇게 명백하다. 폐강 위기에 처해서야 학생들을 최우선 했던 내 말과 행동이 언제부턴가 학생들의 입장을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새삼 깨달았다. 내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학생들 덕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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