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신입 회원과 첫 만남의 날이다. 충북수필문학회는 입회하는 회원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축하해준다. L 선생도 그중 한 분이다. 마침 곁에 앉게 되었다. 선생님과는 지난 문학기행 때 뵈었으니 초면은 아니지만 옆자리가 멀게 느껴지고 서먹했다.

꽃은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준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함께 있는 사람까지도 한마음이 된다. 꽃다발을 줄 때마다 함박웃음으로 축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L 선생도 꽃다발을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꽃향기가 살짝 풍겼다. 꽃으로 자꾸 눈길이 갔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선생님은 꽃다발을 주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 줄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부러워하는 내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꽃다발은 나에게 왔다.

남편 생일이 멀지 않았다. 꽃다발을 들고 오면서 고민했다. 생일선물로 줄까, 솔직할까. 꽃을 포장한 포장지처럼 생각이 생각을 겹쳤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느낀 남편은 소파에 누워 삐죽이 고개만 내밀었다. 아내의 저녁 외출이 늘 똑같은 방향으로 가는 시곗바늘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을 보니 놀려주고 싶었다. 꽃다발을 내밀었다.

"당신 생일 선물!" 순간 당황하는가 싶더니 육중한 몸이 가볍게 튀어 올랐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물건을 반기듯 낚아챘다. 꽃을 보고 웃는 얼굴이 꽃보다 환했다. 자식에게 자랑하고 싶다며 사진도 부탁했다. 꽃 냄새를 맡고 가슴에 품고 손가락 하트도 하고 꽃잎에 입맞춤하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꽃다발을 화병으로 옮겼다. 식탁에 놓고 꽃과의 접합은 내 시간이다. 보랏빛 과꽃과 석죽은 시골집 담 곁에 핀 꽃을 옮겨온 듯 소박하다. 자줏빛 장미와 보라 장미, 핑크 리시안셔스, 라일락과 유칼립투스 구니까지. 볼수록 자연의 색에 빠져든다. 이질적일 것 같은데 조화롭고,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이 빛난다.

꽃을 바라보며 행복한 만큼 고민은 깊어졌다. 나는 남편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반길 줄 몰랐다, 어느 정도는 의아한 눈빛과 의뭉한 내 마음을 눈치챘을 때 말하려고 했다. 꽃다발을 생일 선물이라 믿고 좋아할 줄은 정말 몰랐다.

평소 남편은 꽃을 자주 사 왔다. 꽃을 포장한 것으로도 어느 꽃집인지 알 정도로 꽃 선물은 익숙했고 자연스러웠다. 그때마다 남편의 마음이 고마웠고 잘못도 용서가 되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나를 위한 꽃이기보다 남편이 좋아서 샀을지도 모른다. 포장하는 꽃을 기다리는 설렘, 꽃을 들고 오면서 느끼는 평화로움, 꽃을 반기는 내 행복한 웃음, 꽃이 있는 식탁의 풍요로운 만찬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꽃 선물은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자신의 선물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내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속는 마음이 어떠한지 느꼈을 것이다. 의심하지 않았다면 나를 믿는다는 것이니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잘 속는 편이다. 남편은 물론 학생들에게 속는 일도 많다. 어제는 1층 현관에 일이 있어 내려오니 여자아이가 급하게 뛰어왔다. 친구가 줄넘기하다가 넘어졌는데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다. 아이를 보건실로 보내고 운동장으로 뛰었다. 두 다리를 오므리고 울고 있는 아이를 나는 어찌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따가운 오후 볕에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만 닦아주며 안심시켰다. 몇몇 아이들은 주변에서 같이 울듯 서성이고 어떠한지 물을 때마다 울음소리는 커졌다.

보건 선생님이 오셨다. "일어날 수 있겠니?" 선생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단호했다. 울음을 그친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보건 선생님과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우리 머리 위로 쏟아졌다. 보건 선생님은 아이 팔을 잡고, 나는 선생님 팔을 살짝 잡고 걸었다. 넘어진 아이 줄넘기를 들고 오는 친구는 불안한 듯 우리 곁에서 옆으로 걸으며 동태를 살핀다.

보건 선생님과 눈이 다시 마주쳤다. 게걸음으로 따라오는 아이에게 눈길을 주며 "마음이 예쁘지요?" 한다.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울음 속에 감춘 거짓말과, 울음에 속은 내 자신에게 분노와, 다치지 않아 다행인 안도의 숨이 한데 엉켜 폭발하려는 중이었다. "아팠을 거예요, 순간은. 거기까지만…."

거짓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처럼 거기까지만, 이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구분이 참 어렵다. 진실을 밝히는 일도 타이밍이 필요하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일어날 수 있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울어야 하는 아이나,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밝히지 못하는 나와 다를 것이 무언가.

운동장을 다시 보니 공놀이하는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조금 전까지 들리지 않던 소리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