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장기 미제사건 진범은 누구?
청주 장기 미제사건 진범은 누구?
  • 신동빈 기자
  • 승인 2019.10.03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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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결박·입에 속옷… 몽타주도 유사했다
1991~1993년 청주에 있었던 '희대의 연쇄살인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화성사건 외에 5건의 추가 살인사건을 자백했다.

이춘재는 이중 2건을 충북 청주에서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처제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 외에 청주에서도 연쇄살인 범행을 이어온 것이다. 이춘재가 청주에 머무른 1991년 1월부터 1994년 1월(처제 강간살인으로 검거)까지 3년 동안 지역에서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은 총 5건이다. 이 사건 모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행으로 이춘재가 화성에서 저지른 범행과 유사점이 많다.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 및 주부 강도 사건

1991년 1월 27일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당시 여고생이었던 박모(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의 현장 사진(중부매일 1991년 1월 29일자 15면). 하수도 흉관(점선 표시)에서 여고생의 시신이 발견.
1991년 1월 27일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당시 여고생이었던 박모(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의 현장 사진(중부매일 1991년 1월 29일자 15면). 하수도 흉관(점선 표시)에서 여고생의 시신이 발견.

1991년 1월 27일 오전 흥덕구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 하수도 흉관에서 여고생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박양은 입이 속옷으로 막혀있었고, 양손은 뒤로 묶여있었다.

인적이 드문 공사현장에서 박양이 비교적 빨리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은 전날 이곳에서 김모(당시 30세·여)씨가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에게 강도를 당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26일 오후 8시 30분께 집으로 귀가하던 중 한 남성에게 붙들려 100여m 떨어진 하수관로로 끌려가 현금과 반지 등 12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겼다. 김씨는 범인이 성폭행을 시도하려하자 바닥에 매설된 70m길이의 흉관을 기어 탈출했다. 김씨는 이후 경찰조사에서 "흉관을 기어 나오는데 옆 흉관에서 점퍼를 뒤집어쓴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현장을 수색, 박양의 시신을 확인했다. 이후 경찰은 김씨 등의 도움으로 작성한 몽타주를 전국에 배포해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 또 "낯선 남자가 사건현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세워진 포크레인 옆에 숨어 있다가 달아나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굴삭기 기사를 수사하려 했으나 이 남성은 사건 발생 다음날 행적을 감췄다. 경찰은 3개월의 수사 끝에 박모(당시 19세)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지만 법원에서 박군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남주동 셋방 살인사건

1991년 3월 7일 오후 8시께 남주동의 한 셋방에서 주부 김모(당시 29세·여)씨가 살해당한 것을 남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김씨는 공업용 테이프로 눈이 가려져 있었고, 스타킹이 입에 물려져 있었다. 양쪽 가슴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경찰은 금품이 그대로 남아있는 점과 김씨의 방어흔이 없는 점, 범행에 사용된 도구 일체가 집 안에 남아 있는 점 등을 볼 때 면식범의 소행으로 특정하고 범인추적에 나섰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몇몇이 명확한 알리바이를 제시한데다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면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봉명동 주차장 살인사건

1992년 4월 18일 오전 8시 30분께 흥덕구 봉명동의 한 음식범 주차장에서 이모(당시 34세·여)씨가 숨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이씨의 머리에는 둔기에 가격당한 상처가 있었고, 머리맡에는 벗겨진 하의가 놓여있었다.

당시 시체를 검안한 의사는 두개골 파열을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했다. 사망 추정시간은 18일 밤 12시로 추정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 한 짝과 핸드백 등을 증거물로 확보하고, 이 여성이 일하던 유흥업소 단골손님 중 1명이 범인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수사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면서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강내면 알몸 살인사건

1992년 4월 23일 오전 8시 20분께 청원군(현 청주시) 강내면 학천리 고속도로 확장공사 구간 학천교 아래에서 20~30대로 추정되는 여자의 알몸 시체가 발견됐다. 이 여성은 양손이 뒤로 결박된 채 지면에서 30~40㎝ 아래에 묻혀있었다.

부검 결과, 이 여성은 한 달여 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얼굴 곳곳에 둔기에 맞은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폐의 상태로 봤을 때 하루 담배 1갑 이상을 피워온 것으로 추정, 유흥업소 종사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검거에는 실패했다.

◆복대동 20대 여성 살인사건

1992년 6월 25일 오후 5시 30분께 복대동 S재료상사 안방에서 이모(당시 28세·여)씨가 숨져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이씨는 전화줄에 목이 졸려 있었고, 머리에는 4㎝ 가량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하의는 벗겨져 있었지만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이씨는 갓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장기간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춘재가 청주에 안착한 시점은 정확하게 특정되지 않고 있지만 1991년 7월 즈음에 청주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식을 올린 점을 미뤄보면 1990년 후반부터 청주와 화성을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 발생한 5건의 미제 살인사건 모두 스타킹 등을 이용해 팔을 묶는 등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청주경찰이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 및 주부 강도사건'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진 김씨와 목격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그린 몽타주(중부매일 1991년 1월 30일자 15면). 당시 공개한 몽타주 설명에는 ▶연령은 26~28세 ▶신장은 175cm ▶둥글고 작은 얼굴형 ▶체격은 마른편 ▶작고 날씬한 손이 명시돼 있었다.
청주경찰이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 및 주부 강도사건'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진 김씨와 목격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그린 몽타주(중부매일 1991년 1월 30일자 15면). 당시 공개한 몽타주 설명에는 ▶연령은 26~28세 ▶신장은 175cm ▶둥글고 작은 얼굴형 ▶체격은 마른편 ▶작고 날씬한 손이 명시돼 있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차에 이르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의 사건을 직접 실행했다고 고백한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차에 이르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의 사건을 직접 실행했다고 고백한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1991년 발생한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이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이춘재의 직업과 같은 굴삭기 기사를 특정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범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생존자 김씨와 목격자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몽타주 역시 눈매, 키, 나이, 체격 등이 이춘재의 특징과 일치한다. '1992년 복대동 사건'은 이춘재가 청주에 내려와 꾸린 신혼집(처제 강간살인사건 범행 현장)과 직선거리로 4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도보로 이동하면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이춘재는 자신이 거주하던 화성 일대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볼 때 거주지 인근에서 발생한 복대동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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