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의 화합된 힘으로 자생력 강화… '체인화' 꿈꾼다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형마트들와 SSM(기업형수퍼마켓)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골목상권에 의지해 운영해 왔던 동네수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은 지 오래됐다.

대형마트와 SSM은 변화무쌍한 소비성향에 발 빠르게 대처해 현대화된 시설과 다양한 품목, 선진화된 물류시스템 등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젊은이와 혼족들의 소비패턴을 겨냥한 편의점까지 골목골목 들어서면서 이제 "동네수퍼와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며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 인식 속에 동네 수퍼마켓들이 자구책 마련을 위해 설립한 것이 수퍼마켓협동조합이다.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해 적극 앞장서고 있는 임길재(61) 충주시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기로 한다. / 편집자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물류센터 전경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물류센터 전경

충주지역은 지난 2001년 칠금동 시외버스터미널 2층에 롯데마트가 개점하고 문화동 구 충주시청 부지에 이마트가 잇따라 개점하면서 소비패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형마트 개점에 따라 현대화된 시설과 최적화된 물류시스템으로 다양한 품목을 한군데서 구입할 수 있는 소비환경이 마련되자 이전까지 재래시장이나 동네수퍼를 찾던 소비자들이 대부분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은 급격히 위축되고 생존권을 위협받아 문을 닫는 재래상가와 동네수퍼들이 속출했다.

결국 수퍼마켓 점주들이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대형마트에 대비한 공동 도매물류를 구성하고 지난 2002년 비영리법인인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857-2800)을 설립했다.

충주시는 동네수퍼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당시 목행동에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 공동물류센터 건물 4동을 신축해 줬고 조합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곳에서 공동물류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주류를 포함한 공산품 일체를 취급하고 있으며 공동물류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싼값의 각종 물품을 시내 수퍼마켓에 직접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 운영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조합원들끼리 사분오열돼 심한 반목과 갈등을 겪었고 운영난에 따른 각종 채무로 소송에 휘말렸으며 충주시에 내야할 물류센터의 임대료마저 체납돼 압류당할 위기에 놓였다.

조합원 간 갈등과 반목이 워낙 심하다 보니 조합을 탈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운영도 주먹구구식이어서 적자투성이였다.

임길재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임길재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이처럼 조합의 존폐마저 거론될 정도의 심각한 상황 속에서 지난 2016년 임길재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조합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마자 조합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조합원 간 분열이 가장 큰 현안문제라고 인식한 그는 밤낮없이 조합원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탈퇴한 조합원들을 다시 흡수하는데 주력했다.

조합원 단합대회 등을 열어 조합원 간 친목을 도모하고 화합을 이끌어 내부 결속력을 다졌다.

또 임대료조차 체납되는 등 엉망이었던 조합 운영을 정상화시키는데도 중점을 뒀다.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이전까지 밀려있던 임대료 8천900만 원을 충주시에 납부한 뒤, 타 시·도의 조례 등을 상세히 비교, 검토해 충주시를 설득한 끝에 공동물류센터의 임대료를 전년도 매출액의 0.01%로 정하기로 시와 합의했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월 850만원씩 부담했던 임대료가 무려 50만원으로 파격적으로 줄어들었다.

이같은 노력으로 조합원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뢰가 쌓이면서 조합을 탈퇴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시 조합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조합원이 늘어나고 경영이 개선되면서 당연히 조합의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

현재 조합에 가입한 정조합원은 90명이며 조합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조합과 거래하는 수퍼마켓 점주들도 190여 명이나 된다.

임 이사장이 취임하기 전 3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취임 이듬해인 2017년에 8억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현재는 주류와 공산품 매출이 16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는 앞으로 조합원을 400명까지 늘리고 연간 주류매출을 100억원까지 신장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조합원 확대를 위해 신규 조합원 확보에 기여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신규 조합원 첫 거래시 할인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임 이사장의 과감한 경영개선에 직원들도 적극 동참하면서 조합원 확보와 매출 신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조합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골목상권을 지키는 일이라면 항상 맨 앞에 선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갖고 대형마트 입점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동네수퍼가 처한 심각한 현실을 알리는데 나서고 있다.

임 이사장은 충주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외에도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이사와 중소기업중앙회 이사를 맡아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화장품회사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했던 그는 업종을 변경해 수퍼마켓 운영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충주시 연수동에서 호암수퍼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여년 간 수퍼마켓을 직접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오래전부터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 등에 이를 건의하면서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가 구상하는 방안은 수퍼마켓에 편의점의 장점을 도입한 '편의점형 수퍼마켓' 설립이다.

물류센터 내부 전경
물류센터 내부 전경

편의점이 지니고 있는 현대화된 물류시스템을 수퍼마켓에 도입해 젊은층과 혼족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고 이를 체인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전국 52개 조합을 컨트롤하는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차원에서 자체 물류창고를 갖춰 직접 물류를 운영해야 한다"고 연합회에 제안했다.

또 "전국에 '편의점형 수퍼마켓' 모델가게를 12개 정도 오픈시킨 뒤 성과가 있을 경우, 젊은이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자"는 의견을 정부 측에 건의했다.

이를 통해 청년취업 문제 해소는 물론, 골목상권을 살리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대형마트와 SSM 입점으로 위협받는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들의 입점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고 강조한다.

임 이사장은 "최근에는 농협 하나로마트와 대기업 편의점, 노브랜드마트까지 계속 시장을 잠식해 동네수퍼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입장"이라며 "생존을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하나로 뭉쳐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자생력을 갖춰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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