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曺國) 현상과 공론장 부재
조국(曺國) 현상과 공론장 부재
  • 중부매일
  • 승인 2019.10.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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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자기주장 설득이나 강요, 타인의 주장 수용이나 반대 그리고 합의'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말로 건 글로 건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삶의 토대라는 얘기도 된다. 이 상호작용 중에는 언쟁도 있을 테고, 맞장구도 있을 것이다. 상호작용이 무엇(의견수렴 사안이나 해결할 당면 문제)을 놓고 이뤄지든 그 결과는 합의이거나 결렬이다. 이 상호작용의 공간이 '공론장(公論場)' 또는 '공공영역(公共領域:Public sphere)'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어떤 주제나 사안을 놓고 자유로운 대화나 토론을 통해 공통 의견을 수렴한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정치체제에 영향력을 추구한다.

공론장 기원은 고대 그리스 폴리스(Polis)다. 폴리스는 성채인 아크로폴리스와 광장인 아고라(Agora)로 크게 구분된다. 아고라에서 민회(民會), 재판, 상업, 사교 등의 활동이 이뤄졌다. 민회는 그리스 도시 국가의 정기적 시민 총회다. 시민은 시민권(여성, 노예, 외국인 제외)을 가진 성인 남성에 한한다. 시민들은 아고라에 정기적으로 모여 정치 문제, 전쟁에 대한 대비 등 국가 중요 정책을 토론을 거쳐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 뒤 국가에 제안했다.

공론장 참여자는 아고라에서처럼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발언권에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의사소통 행위가 상호 이해에 근거해 자유롭다. 이 공론장을 처음 학문 영역화한 학자가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그는 공론장을 '이성에 입각한 토론을 통해 사회 전체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범과 가치에 대한 합의를 창출하며 국가 권력에 대한 합리적 정당화를 제공하는 공간'이라 했다. 당초 공론장은 커피하우스, 살롱과 클럽 등 물리적 공간, 즉 같은 시간대에 직접 만나 대화가 이뤄지는 경계 지워진 공간이었다. 출판문화 발전에 따른 신문, 잡지 등 시각과 방송 등 시청각 매체는 물론 인터넷 사이버 공간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사이버 공간의 공론장 역할은 가공할 만하다. 다소의 익명성 보장과 면대면(face to face)이 아니기 때문일까? 여하튼 구조화된 언론이건. 사이버 공간의 영역이건 여론수렴의 장이라 본다면 모두 공론장의 전범(典範)이다. 특히 언론은 전범 가운데 전범이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공론장 역할을 하는가? '그렇다'는 어색한 답변이다. 방송과 신문(잡지 포함)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은 각각 공론장 역할에 나서지만 그들의 공론은 정치적 영향화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국가 권력에 주체로 맞서야 하지만 오히려 객체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형식상 공론장은 어느 시기보다 활성화되어 있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이 흠이다. 다양한 의견이 아닌 경도(傾度)된 의견만 수렴하는, 즉 적대적 의견은 감히 공론장에 낄 수 없는 언론사의 구조적 특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없다'는 의미다. 불합리하게 답습해온 위계서열적 언론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지나친 오락성과 권력의 시녀화 역시 공론장 부실의 원인이다. '경제와 권력에 의한 언론의 식민화'가 벌써부터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국 현상. 여론은 들끓고 있으나 수호와 퇴진이 수렴되지 않은 채 늘 평행선이다. 언제 수렴될 것인가? 과연 수렴이 가능한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가? 흑백논리에 물들어 백가쟁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전통 아닌 전통과 이를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조절하지 못하는 언론에 주요한 원인이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지나친 시민의 함몰과 정치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 팽배 역시 조국 현상을 지루하게 확대시키고 있다.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 대검찰청 일대 도로 등을 메운 시민 시위가 이를 입증한다. 시위에 나선 양측 단체들은 시위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니 언제라도 시위가 가능하다. 그러나 메아리가 없다.

언론은 시민사회와 국가의 매개체로 시민사회의 불만과 욕구를 국가에 전달하고, 국가로 하여금 사회의 불만을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늘 그래 왔듯이 우리 국가는 한쪽 귀로만 듣고 있다. 국가의 편향적 수용은 시민사회의 대항 헤게모니를 걷잡을 수 없게 키운다. 국가와 시민사회, 시민사회 간의 의사소통의 부재와 싸움은 정권 사멸을 초래한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그랬듯이 말이다. 우리는 불행히도 국가와 시민사회의 의사소통 부재에 따른 부실한 공론장 속에 살고 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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