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성진 사회부장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은 글이나 영상 등을 기록(記錄)이라고 한다. 이를 언론계로 가져오면 글은 신문, 영상은 방송을 의미한다. 신문은 역사의 기록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끔직한 범행을 직접 실행했다고 이춘재가 자백했다. 1991~1992년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2건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30여건의 성폭행 사건도 시인했다. 피해여성의 속옷 등에서 검출된 DNA가 무기수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63년생 이춘재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DNA 검출 증거를 통한 압박과 회유에 이춘재는 결국 자신이 희대의 연쇄살인마라고 실토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이 30여 년만에 용의자를 특정한 것이다. 과학수사로 화성사건을 풀어보겠다는 경찰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당시 증거물에서 DNA를 어렵게 채취하는 등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점은 칭찬하지만 제보로 실마리가 풀린만큼 경찰이 공을 내세우기는 머쓱할만하다.

여튼 결과적으로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경찰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지난 4일 열린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은 "빠르게 범인을 검거해서 조금이라도 희생자를 줄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 그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생긴 점에 대해서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희생자들이 그런 피해를 어떻게 회복하고 한을 풀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악의 미제사건을 해결할 키를 이제서야 겨우 틀어쥔 경찰이 궁색해진 이유는 다름아닌 부실한 기록 때문이다. 이춘재가 대대적인 경찰수사에도 연쇄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사기록의 오류에 기인한다. 경찰이 추정한 용의자의 혈액형이 달랐고, 족적도 차이가 있었던 탓에 이춘재는 용의선상에서 번번히 벗어났다. 이 덫에 빠져 경찰에 의해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 중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살하거나 고문 후유증을 겪었다. 장시간 해결되지 않고 미제로 남은 사건은 당시 기록으로 남긴 수사서류가 유일한 단서다.

사건 발생 때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의 발자취는 기억에 불과하다. 천신만고 끝에 범인을 특정하더라도 기억은 쓸모없는 허상일 뿐이다. 기록만이 증거로 법정에서 채택된다. 하지만 수사기록으로 화성연쇄살인범을 추적하던 경찰이 오히려 늪에 빠진 형국이다. 이제 언론은 이춘재 신상털기가 아닌 경찰의 부실수사를 파고들고 있다. DNA 검출기법 향상과 프로파일러의 전문적인 노하우 축적 등 날로 발전한 과학수사가 당시 수사기록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성사건 수사기록은 부실하게 쓰여졌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해 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했으며, 증거로 쓰일만큼 파괴력도 지니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내년 창간 30년을 맞는 중부매일은 1990년 1월20일자 '지령 1호' 창간호부터 발행한 모든 신문을 기록으로 갖고 있다. 1994년 1월 이춘재가 처제를 강간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사진을 주요 일간지 및 전문보도채널에 제공하게 된 것도 기록을 온전히 보관하고 있었기 깨문이다. 이춘재가 청주에서 저지른 2건의 살인사건 당시 현장 사진이나 당시 그려진 몽타주를 공개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록은 과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록은 힘이다.

박성진 기자
박성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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