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농촌에도 진정한 한글날을 기대하며
우리의 농촌에도 진정한 한글날을 기대하며
  • 중부매일
  • 승인 2019.10.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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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근중 농협창녕교육원 교수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한글날은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고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또한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25년 곧 서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되었다. 한글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인데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세계 문자 역사상 그 짝을 찾을 수가 없다.

한글만큼 우수한 문자가 또 없다는 것을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한글의 창제로 말미암아 우리는 문자가 없어서 남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다가 우리말을 중국말 문법에 맞추어 쓰던 불편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문화, 경제, 정치 등 각 분야에 걸친 발전을 이루어 세계 유수한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한글날은 이러한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공로를 기리는 날이다.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으로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곧 오늘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양력으로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그날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당시는 우리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에 눌려서 위축되어 있던 때라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글날을 양력 10월 9일로 확정한 것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 나서로 '정통 11년 9월 상한'의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그것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로 정한 것이며 1946년에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거국적인 기념 행사를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한글날 기념 행사는 민족주의 국어학자를 비롯한 소수 유지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한글날 행사가 전국적인 것이 되어 해마다 큰 기념식을 시행해 오고 있다.

이런 뜻깊은 날을 맞아 일본의 경제보복과 정치적 국론 분열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이때 이 나라 산업의 근간인 농업의 관련용어의 올바른 사용이 더 이상 미루지 않기를 강력히 주장한다. 몇해전 경각심을 갖은 일부 국회의원들이 일제식 농업용어의 잔제를 순우리말로 바꾸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눈길을 끌기고 했었다.

하지만 몇해가 지난 지금도 우리의 농촌·농업 현장에서는 "No Japan, No 아베"의 구호와는 동떨어지게 아직도 일제식 농업용어를 쓰지 않고는 손쉬운 의사소통이 이루러지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금도 과거 일제의 잔제인 일본식 농업용어와 한자식 표현(야채(野菜)가 아니고 채소(菜蔬), 병충해(病蟲害)가 아니고 병해충(病害蟲) 등)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농업현장에 잘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농들에게 조차도 낯설게 느끼는 용어가 너무 많다.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농업용어 확산을 통해 보다 쉽게 농업용어와 농업문화를 알 수 있도록 순수한 한글 농업용어 확산 붐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김근중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
김근중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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