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충주는 가을이 되면 사과향이 짙다. 어딜 가든지 붉은 사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에 관한 행사가 많다. 며칠 전에는 전국 사과 백일장이 열렸다. 다른 지역 문인들은 '사과 백일장'이란 이름이 참 예쁘단다. 글도 술술 잘 써질 것 같단다.

올해도 전국에서 '2019 충주농산물 한마당 축제'에 왔다가 백일장에 참여하거나, 반대로 백일장에 왔다가 축제를 보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과 백일장은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많이 참여한다. 다 쓴 글을 낼 때는 굵고 맛있는 사과 한 알을 오래 전부터 주고 있다. 사과를 받고 미소 짓는 사람들을 보면 순간 나도 참 좋다. 백일장을 마치면 회원들끼리 저녁을 먹거나 차를 마신다. 난 그 시간도 참 좋다. 다른 계절보다 유독 가을 저녁시간은 더 좋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좋은 가을 추억을 만들었다. 즐겁게 백일장을 마치고 시골에 사는 수필가 김애자 선생님 댁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마침 시골에 사는 김애자 선생님 댁은 최근 아내랑 다녀왔었다.

한적한 산아래 위치한 선생님 댁은 정말 고요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렸다. 아내와 난 그 소리에 취해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선생님이 텃밭에서 뽑아주신 파와 고추, 가지 등을 한 아름 안고 와 며칠 가지요리를 먹었다.

아내와 나는 이 다음에 한 번 더 찾아가자고 얘기를 나누었던 터라 선생님 댁으로 간다는 말에 은근 신이 났다.

우리 회원들이 엄정 가춘리 선생님 댁에 도착하니 노을이 살짝 번지며 마당에 보라색 꽃이 어찌나 예쁜지 모두 사진을 찍었다. 마치 모델처럼 한 명을 꽃 옆에 세우고 저마다 휴대폰을 눌러댔다.

선생님은 짜장면을 시켜 주었다. 너무 시골이라 설마 배달이 올까 걱정했는데 정말 왔다. 우리는 우르르 달려가 짜장면 16인분을 옮겼다. 알고 보니 주인의 후한 인심에, 혹여 늦게 오는 사람이 있을 까봐 2인분을 더 갖고 왔단다. 그것도 듬뿍듬뿍.

그 마음 씀씀이에 짜장면을 먹지 않고도 맛있게 느껴졌다. 먼 거리 배달이라 면 따로 짜장 따로 한 짐이었다. 우리는 팀을 나누어 상 펴기, 면 살짝 문지르기, 짜장 퍼 담기, 상으로 옮기기…, 세상에 이렇게 잘 맞는 팀이 있다니.

역시 짜장면과 탕수육은 최고의 맛이었다. 오래 기억될 맛이었다. 창밖을 보니 까만 하늘에 한 입 베어 물고 내려놓은 노란 단무지 같은 초승달이 걸렸다.

왁자지껄 대화 속에, 짜장면 먹는 소리에, 막걸리 마시는 소리에, 가춘리의 가을밤이 깊어갔다. 다 먹고 정리를 시작했는데 그릇 치우기, 설거지, 상 닦기, 상 접기…, 또 한 번 환상의 팀을 자랑했다. 그 다음 커피를 마시며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큰 잔치를 치룬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명절날 반가운 친척들이 와글와글 모인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선생님의 앙상한 손이 자꾸 생각났다. 평생 글 쓰고, 자녀 키우고, 열심히 사셨을 작지만 큰 손. 우리가 다 간 뒤 뒷정리를 하며 "왔다가니 참 좋다, 좋아."라며 아픈 허리로 미소 지으실 들꽃 같은 선생님.

가을이 깊어간다.

앞으로 가을이 오면 늘 생각날 가춘리의 가을밤. 나뿐만 아니라 함께 한 문협 회원들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을 가을밤일 것이다.

"가을 추억선물을 만들어 주신 김애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김경구 작가
김경구 작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