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1998년의 한국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고 자금을 지원받는 처지였다. 살만해졌다고 느낄 만 할 때에 터진 외환위기로 온 국민은 아연실색했고 도산하는 기업은 줄을 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꾸려진 정부와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 때 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든 희소식이 전해진다. 바로 박세리의 맨발 투혼으로 만들어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의 우승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웃음기를 띨 수 있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렀다. 세계 여자 골프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 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미국 언론에서 한국 여자 골퍼들의 연이은 우승이 LPGA를 망하게 할 거라고 했겠는가. 영어를 못한다는 핑계를 대며 자격을 운운하기도 했던 그들이다. 하기야 한국 선수들에게는 통역이 늘 따라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 선수들의 유창한 영어 인터뷰를 듣는다. 그녀들은 골프 실력만큼이나 영어 실력도 우수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얼마전 더 큰 소식이 들렸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한 나라의 선수들이 1위부터 3위까지를 차지한 경우는 한국 여자 선수들이 처음이라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박세리 선수가 지친 국민을 환호하게 한 후로 이어진 한국 여자 골퍼들의 노력은 곧 성적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 소속된 선수가 2천여 명에 이른다니 미국 LPGA에 소속된 선수에 버금가는 규모이긴 하다. 저변이 넓긴 넓다.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얼마나 많은가. 한국 남자 프로 골퍼 수가 여자 골퍼의 두 배가 넘지만 세계 골프를 지배하진 못한다. 대단한 한국 여자다.

한국 여자 골퍼들은 세계 무대에서 오직 실력으로 모든 것을 성취했다. 골프 대회는 수많은 갤러리가 동행한다. 그곳에선 편법이 있을 수 없고 불공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규칙이 그것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또한 신사도를 우선 한다. 명예의 스포츠라고 한다. 자신의 실수에 스스로 벌타를 주는 스포츠가 골프다. 이런 골프의 세계에서 한국 여인들이 이룬 쾌거는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승리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경기에서 그들은 실력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다. 이것이 정의로운 것 아닌가.

요즘 한국 사회의 어른들은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로움을 우리의 미래인 어린 사람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염치없는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고 수오지심의 의미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삿대질을 해대고 있으니 어디에서 젊은이들이 신사도를 배울 것이며 명예를 훌륭한 가치이며 지켜야할 도리임을 교육받을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날들이 덧없이 지나가고 있다.

통계청이 2017년 사회조사 결과 추산한 골프인구가 386만 명이었으니 지금은 400만 명을 넘을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사도를 우선하는 골프를 한다는데, 누군가가 말한 '골프를 시작했을 때는 신사가 아닐지라도 이 엄격한 게임을 하게 되면 신사가 되고 만다'는 격언이 우리 사회에서는 의미 없는 공언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한국 여인들이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골프의 세계처럼 실력으로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승리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려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들이 즐거운 인생을 살 것이 아닌가.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