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두사건 애꿎은 시민 범인으로… 진범 검거 기회 놓쳐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56)가 1991년 충북 청주에서 저지른 두 건의 살인사건이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과 '남주동 주부 피살사건'으로 확인되면서 경찰 강압수사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는 청주에서 발생한 두 사건의 수사과정이 화성 8차사건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모방범죄로 결론이 난 화성 8차사건은 이춘재 스스로 진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20여년을 복역하고 가석방으로 출소한 윤모(52)씨는 최근 "억울하다. 나는 무죄"라며 재심 청구 의사를 밝혔다. 

가경동 여고생 피살사건은 1991년 1월 26일 가경동 택지개발공사장에서 A(당시 17세·여)양이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청주경찰은 인근에 사는 박모(당시 19세)군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경찰이 박군을 범인으로 지목한 배경은 사건 당일 당구장을 찾은 박군의 잠바 어깨와 구두에 흙이 묻어있던 점, 박군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날 포장마차에서 자신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한 점 등이다.  

하지만 수사기관 판단과는 달리 박군은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이 사건을 심리한 청주지법 2형사부는 판결문을 통해 "박군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고, 피해자의 진술이 수차례 번복돼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무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박군을 범인으로 확신한 경찰은 결국 진범을 검거하지 못한 채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겨두게 됐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 사건은 진범이 잡혀도 처벌하지 못한다. 

남주동 주부 피살사건은 같은 해 3월 7일 터졌다. B(당시 29세·여)씨는 이날 오후 8시께 자신의 셋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B씨는 테이프로 눈이 감겨있었고, 스타킹이 입에 물려져 있었다. 양손은 붕대로 묶여있었다. 오른쪽 가슴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고, 왼쪽 가슴에는 흉기가 꽂혀 있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같은 동네에 사는 휴학생 정모(당시 20세)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자백을 받아냈다. 

당시 정씨는 경찰조사에서 "출근 준비를 하던 B씨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고 성충동을 느껴 담을 넘어 침입했다"며 "B씨가 소리를 지르려고 해 목을 졸랐는데, 실신해 강도로 위장하려 서랍 속에서 테이프를 꺼내 입을 막고 옆방으로 끌고 가 흉기로 앞가슴을 찔러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씨는 2차 진술에서 이러한 자백 일체를 번복했다. 경찰이 허위 자백을 받기위해 강압수사를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이후 구체적인 증거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씨를 풀어줬다.

경찰이 끝내 해결하지 못한 두 사건의 진범은 28년 후 이춘재의 자백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15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춘재가 청주에서 추가로 저지른 살인사건이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과 '남주동 주부 살인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이 두 사건을 이춘재의 범행으로 결론낸 것은 이춘재가 그림을 그리며 구체적으로 사건을 설명했고, 범인만이 알 수 있는 특징들을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춘재의 청주 범행이 확인되면서 과거 수사를 담당했던 청주경찰에 대한 비난여론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선량한 시민을 범인으로 몰면서 진범인 이춘재를 검거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당시 용의선상에 오르지도 않은 이춘재는 1991년 1월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1994년 1월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까지 청주에서만 3건의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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