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올해는 예년에 비해 태풍의 영향권에 자주 들었던 한 해다.

태풍이 몰고 오는 비바람의 위력은 성난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를 동반하기도 한다. 집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뿌리까지 뽑아낼 기세로 불어대는 비바람에 잘 버텨준 것이 대견할 지경이다.

태풍 13호 '링링'이 한반도에 상륙했을 그 무렵이었다. '야옹이'가 실종된 것은….

오래도록 같이 보며 함께 살아가고 싶은 길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은 다른 고양이에 비해 애교도 많았고 영리하기까지 하였다. 외출했다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대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늘 기다리던 적당한 장소에서 나를 만나 함께 계단을 오르곤 하였다. 마당에 매여져 있는 진돗개 '여진이'는 씩씩거리며 질투를 하고 그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도도하게 꼬리를 치켜세우고 야옹이는 계단을 사뿐사뿐 올랐다.

개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나의 주변에서 맴도는 '야옹이' 때문에 나는 행복하였다.

암컷인 야옹이의 잦은 출산이 너무 안쓰러워 지난봄에는 중성화 수술도 시켰다. 새끼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고 건강하게 더 오래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애정을 주고받던 우리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야옹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낯익은 길고양이들은 사료를 먹으러 집을 드나드는데 온종일 집 주변에 있던 야옹이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길고양이의 특성상 수컷들은 영역 싸움에서 밀리면 집을 떠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암컷들은 영역 문제에서는 자유로웠기에 집안에 설치된 CCTV에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았다.

영상 속의 야옹이는 새벽녘에 챙겨준 사료를 먹고 거실 데크 쪽에 와서 토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야옹이.

함께 오래 살고 싶어서 시킨 중성화 수술이 잘못되었나? 차라리 그냥 두었으면 더 오래 살 수 있었는데 나의 오지랖 때문에 생명을 단축시킨 것은 아닌가 싶은 후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태풍을 피하러 어떤 장소에 들어갔다가 바람에 문이 닫혀 갇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해 전에 그렇게 갇힌 고양이를 구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옹이를 부르며 사 나흘 동네를 돌아다녔다. 다른 길고양이들에게는 야옹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돌아오지 않는 야옹이는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하고 슬픈 온갖 생각을 정리하고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걸걸한 음성의 고양이 울음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귀 잘린 고양이 아! '야옹이'였다.

"너∼, 어디 갔다 왔니? 살아있었구나. 어머 이게 꿈이냐? 생시냐? 고맙다 고마워 살아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맨발로 뛰쳐나가 반기는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녀석도 격하게 나의 몸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야옹이의 목소리는 걸걸하게 쉬어 있었다. 만약 어딘가에 여태껏 갇혀 있었다면 애타게 찾는 나의 목소리를 들은 야옹이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지금 곁에 누워있는 야옹이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목소리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야옹아, 나는 지금도 너의 보름 여동 안의 행적이 무척 궁금하단다.'



그중에서도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열매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태풍이 부는 대로 몸을 내맡기며 바람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모습처럼 안쓰럽게 보였다.

계단을 콩콩콩 내려와서는

그래서 토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