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배트맨시리즈의 흉폭한 악당 '조커'가 재조명되고 있다. 토드 필립스감독의 영화 조커가 개봉 보름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영화 인기검색어 1위도 조커였다. 조커로 빙의한 호아킨 피닉스의 극사실주의적인 연기도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천만 영화가 흔한 국내 영화판에서 관객 수가 돋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는 조커의 캐릭터와 폭력성, 관객들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논쟁적인 영화다.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의 스핀오프다. 스핀오프는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나 설정에 기초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1938년 <디텍티브 코믹스 27호>를 통해 배트맨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조커는 사이코패스 악당이었다. 조커가 강하고 엽기적이고 사악할수록 그를 응징하는 배트맨은 강렬하게 부각됐다.

배트맨은 정의의 사도다. 조커에도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전형적인 금수저인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인생은 부모와 함께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 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귀갓길 극장 부근에서 강도를 만났고, 강도가 쏜 총에 부모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고아가 된 그는 그날 이후 고담시에서 범죄를 청소하는 일에 일평생을 바치기로 맹세한다.

늘 고독한 싸움을 추구했지만 상위 1%에 포함될 수 있는 막대한 재산은 고담의 부패한 권력자들과 사업가들, 암흑가의 범죄조직, 그리고 무시무시한 살인마로 부터 세상의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배트맨은 대중이 가장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이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기반으로 철저하게 평범한 '인간'에서 출발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브루스 웨인에게 대중들을 열광했다. 슈퍼히어로가 아니면서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풍부한 자본력과 고성능 자동차와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등 세련된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캐릭터로 미국 자본주의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맨이 탄생했던 DC코믹스의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후유증과 빈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현실과 법치가 통하지 않는 갱단의 무법천지가 일상적이었다. 이때 등장한 베트맨이라는 고전만화 속 캐릭터는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배트맨을 주목하면서 캐릭터도 진화했다. 1990년 팀버튼 감독의 첫 편을 시작으로 9편의 베트맨 시리즈중 대부분은 주로 베트맨의 영웅담에 포인트를 맞추었다.

하지만 이젠 배트맨이 아닌 악당 조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다. 비현실적인 정의의 사도보다도 부조리한 사회 환경이 만든 조커에게 대중들은 공감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다크나이트(Dark Knight)에서 선과 악의 본질을 놓고 끊임없이 고담시와 베트맨을 시험하는 조커는 인간의 위선과 편협함을 가차 없이 까발렸다.

'조커'에선 어린 부르스 웨인은 있지만 배트맨은 없다. 조커의 탄생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언을 꿈꾸던 갈비뼈가 보일만큼 삐쩍 마르고 가난한 청년은 왜 천하의 악당인 조커가 됐을까. 그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도덕적 가치가 무너진 사회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악은 비정상적인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독버섯처럼 자랄 수밖에 없다. 불우한 가정, 직장내 처우, 궁핍한 생활, 고질적인 질환 여기에 양극화현상과 가진자, 배운자들의 위선과 조롱등이 겹쳐져 극단적인 악을 키웠다. 영화 '기생충'과 비교되는 것도 사회적 모순과 계층간 갈등이 폭력으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고문

복잡다단한 사회구조에서 선악의 개념은 간단치않다. '조국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특권과 반칙으로 공공의 질서를 무너트린 자들이 공권력의 피해자로 둔갑되는 혼돈스런 세상이다. 가면을 쓴 배트맨이 검은 망또를 휘날리며 정의의 이름으로 악당을 잔인하게 무찌르는 냉혹하고 감성적인 캐릭터는 화면속에만 존재한다. 안정된 경제기반 속에 배려하고 존중하는 공동체윤리 의식이 사라진 삭막한 사회에서 조커라는 괴물은 언제든 어둠을 뚫고 기괴한 웃음을 터트리며 우리 곁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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