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2월 24일 동아일보에 보도된 최초의 우승자 신윤득
1927년 12월 24일 동아일보에 보도된 최초의 우승자 신윤득

최근 유투브에서 급상승한 인기스포츠라면 씨름을 빼놓을수 없다. 지난 9월에 충주에서 개최된 세계무예마스터십과 영암에서 개최된 추석장사씨름대회이후 이 두 대회의 영상이 한달사이 100만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80년대 씨름전성기를 지나 90년대 IMF 등으로 프로씨름단이 해체되며 대중들로부터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국가무형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그리고 세계무예마스터십이 개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씨름이 스포츠로 체계화된 것은 1927년이다. 그 이전까지는 명절이나 장터에서 놀이이자 게임으로 행해진 민속놀이였다. 그러나 서구스포츠인 야구, 농구, 축구, 레슬링, 권투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우리나라 전통종목의 필요성이 제기돼 당시 전문가들이 모여 샅바씨름경기규칙을 만들어 스포츠로 체계화 시킨 것이다.

한국의 씨름은 일제 강점기부에도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스포츠였다. 1927년 제1회 조선씨름대회에서 정규샅바씨름에서는 뚝섬에 사는 신득윤이 우승을 차지했고, 번외경기로 열린 통씨름에서는 함흥의용청년회에서 파견된 현명호군이 우승했다.

당시 씨름경기는 야외 링에서 개최했다. (1929년 6월 12일자 동아일보)
당시 씨름경기는 야외 링에서 개최했다. (1929년 6월 12일자 동아일보)

1929년 6월 10일부터 3일간 제2회 조선씨름대회가 기독청년회관(YMCA)에서 개최됐다. 당시 기록을 보면 농민, 학생, 상업 등에 종사하는 다양한 씨름꾼들이 100여명이 출전했고, 우승자는 순금상패와 트로피를 부상으로 수여했다고 한다. 이 대회에는 제1회 대회에서 통씨름에서 우승한 현명호 등이 소속되어 있는 함흥팀을 비롯해 정규씨름 우승자인 신윤득의 소속고장인 뚝섬 등에서 많이 출전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현명호는 1929년 개성체육회 주최 제1회 조선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1930년에는 통씨름에서 또 우승을 차지했다. 1931년 평양대회 우승 등으로 초기 전국씨름대회의 장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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