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수업시간에 한 아이가 책을 읽고 있다. 나 역시 여고시절, 선생님 눈을 피해 소설책 읽기에 빠져 스릴을 즐긴 전과가 있기에 못 본 척 적당히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책장을 열어 잠깐 내용을 살펴보니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이 쓴 자전적 소설이다. '둥지'라는 제목부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우연인지 1인칭 주인공인 지은이가 까마득한 초등학교 후배인지라 호기심으로 단숨에 읽어 내렸다.

추천인 국어선생님은 글은 이렇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번번이 좌절에 부딪치곤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만 훌륭하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놀랍게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기도 한다. 무거운 돌을 밀어 올리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먼저 읽고 딸에게 권해주며 엄마하고 생각을 서로 나눠보자 했다. 딸에게 온 메일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난 울고 말았다.

"나 때문에 부산하게 시작되는 엄마의 아침이 언젠가는 너무나 그리운 모습일 테지요. 그동안 엄마 힘들게 한 거 미안해요. 진심이 아니란 걸 느꼈으면서도 서운하고 아팠던 마음을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답해왔던 것 같아요. 언젠가 결혼해 딸을 낳아 키우게 되면 그때서야 엄마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까요? 오랫동안 많이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이제야 조금이나마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 부탁이 있어요. 화가 날 때는 말하지 말아요. 엄마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들이 저에게 상처가 되니까요. 조금 참았다 시간이 흐른 후 '얘야.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지난번에도 그렇게 얘기한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해 주세요. 저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문학 시간이 즐거운 이유가 엄마 때문이고, 일찍 영어를 시작하게 해 줘 재미있고 신나게 영어공부를 하게 된 것도, 어린이합창단원으로 공연하며 폭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것도, 시의 아름다운 정서를 제게 가르쳐 준 것도, 책 많이 읽는 엄마의 태교로 독서를 좋아하게 된 그 모든 것들까지. 엄마한테 받은 게 셀 수없이 많아요. 존경하는 우리엄마, 마음 여린 우리엄마. 너무너무 사랑해요."

그렇게 고백하던 딸이 어느새 엄마가 되어 요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가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소설로 쓴 남학생. 사랑의 이름으로 순간마다 잔소리를 해 대는 엄마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멋진 충고를 하는, 엄마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야무진 사춘기 여학생. 누가 이 아이들에게 "도대체 요즘 아이들 버르장머리 없고, 감각적이고, 가볍고 세상이 말세야 말세"라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도, 어머니도, 내 아이들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까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현재 시점에서는 언제나 요즘 아이들이다. 급속하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 또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분명한 건 언젠가 둥지를 떠나 자기 삶을 펼치게 될 요즘 아이들 그들의 어깨위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때는 말야~" 충고하기 보다는 개성있고 창의적인 그들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소통하면 화통하고 형통할 것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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